(조선일보 2018.02.15 이미지 산업1부 기자)
이미지 산업1부 기자
요즘 20·30대 청춘들도 '명절 증후군'을 겪는다.
미혼자들은 "결혼 언제 하느냐" "취업 준비 잘 돼 가느냐"는 얘기가, 기혼자들은 "애 언제 낳느냐"는
말이 스트레스다. 잔소리가 싫어서가 아니다. 어른들의 속 모르는 타박이 더 괴롭다.
청춘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불가피하게 '나중의 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얼마 전 30대 초반 후배 부부에게 "아기는 안 낳느냐"고 했다가 "집 사느라 낸 대출 때문에 아기는 꿈도 못 꾼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알만한 기업에 다니는 이 부부의 월 소득은 둘이 합쳐 650만원 정도.
무섭게 오르는 집값에 재작년 결혼하면서 회사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전용 64㎡(약 19평) 규모의 집을 샀다. 다행히 당시에는 보금자리대출에 소득 상한이 없어 2억6000만원을 대출받고,
모자라는 1억4000여만원은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친척에게 빌려 마련했다.
자신의 힘으로 결혼과 주거를 해결한 두 사람이 대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30년간 갚기로 한 보금자리 대출금은 매월 60만원씩 빠져나간다.
나중엔 상환 금액이 150만원으로 늘어난다. 친척에게 빌린 돈은 월 100만원씩 갚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 대출 등을 메우면 남는 금액은 약 200만원.
이걸로 교통비·식대·경조사비 등을 쓰면 저축은 요원하다.
후배가 보여준 엑셀 파일에는 360개월 동안의 상환 계획이 깨알 같이 적혀 있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만약 아기라도 생겨 홑벌이가 되면 한 달에 150만원씩 마이너스예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고민이 많다.
요즘 소개팅 시장에서는 '서울 아파트 보유'가 인기 조건이라는데, 미혼·독신 가구의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용 85㎡ 이하 아파트는 100% 가점제이다. 배우자나 자녀가 없으면 청약은 꿈도 못 꾼다.
최근엔 만 30세 이상 1인 가구에 적용하는 '내 집 마련용 디딤돌대출 요건'이 강화됐다.
'미혼·독신 가구를 겨냥한 싱글세(稅)'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 결심을 하게 되는 건 데이트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같은 집'에 가고 싶어서래. 근데 나는 같이 돌아갈 '집'을 마련할 수가 없어."
정부 정책만 보면 결혼을 하고, 자녀 두세 명을 낳으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청춘들은 말한다. "집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애를 낳나요."
집이 먼저일까, 결혼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올 명절에도 20·30 청춘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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