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평화를 이루자는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설립 취지에서 보듯이 올림픽은 심신의 각축을 통해 이상적 인격에 도달할 수 있다는, 다분히 교육적 기대를 갖고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믿음과 상통한다. 그리스인들은 신의 제전으로 지역 간의 분쟁을 멈춘 채 주기적으로 경기를 열고 우승자를 가장 이상적인 인격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의 몸을 본 떠 조각하고 경기장에 세워 본보기로 삼았다.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리스의 신과 인간”전을 기획했다. 거기에 출품된 “원반 던지는 사람”은 그리스 고전기를 대표하는 조각이다. 용수철처럼 몸을 비틀어 곧 원반을 날리려는 순간이 포착된다. 이 조각은 과격한 동작임에도 일정한 비례에 따라 신체의 균형을 유지한다. 더욱이 명상에 잠긴 듯 안정된 표정을 하고 있다. 결코 결합될 수 없어 보이는 움직임과 멈춤이 조화를 이룬다. 신의 제전을 통해 인정받은 이상적 인간의 상이다.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코마네치는 20년간 독식해온 소련 선수들의 기록을 깨며 여자체조 삼관왕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최고점인 10점 만점을 7번이나 기록했다. 불가능한 점수다. 학생들의 미술 실기과제를 평가해 본 나로서는 만점이란 아무리 잘해도 줄 수 없는 점수라는 것을 잘 안다. 그만큼 그의 체조는 판정단이 그 부담을 잊을 정도로 완벽했다. 당시 『타임』지는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 했다.
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했던 이상에 들어맞았다. 그의 경기는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라는 올림픽의 모토와 고전적인 균형을 완전하게 구현한 것으로 비쳤다. 그의 승리는 소련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노선을 걷고자 한 조국 루마니아의 이미지를 갱신시켰다. 그는 국민의 환영과 함께 영웅칭호를 받았고 국가의 자랑이 되었다. 체육인으로서 최고의 지점에 이르렀고 사회주의 조국의 견고한 이념을 대표했다.
하지만 코마네치는 1989년 겨울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헤매며 찬 서리 내린 평원을 가로질러 가까스로 국경에 도달했었다. 수비대의 총알과 굶주림을 무릅쓴 루마니아의 영웅이 헝가리 군인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다. 이상적 인간은 오간 데 없었다. 그는 스승이 먼저 망명했기에 감시를 받아왔고 대중선전에 이용만 당했다. 이상의 인물로 사는 것 대신 현실의 자유를 선택했던 것이다.
2015년 LA에서 열린 도하골스포럼에서 코마네치는 필사의 탈출과 이후 자유세계의 적응 과정이 선수생활보다 더 소중하다고 밝혔다. 이는 이상적 인간이 되는 것보다 자유세계에서 사업가로 강연자로 살아가는 지금 그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포럼의 다른 섹션에서 청중들 앞에 있었던 김연아가 이번 동계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봉송자로 성화대를 밝혔다. 아찔하게 높은 빙판에서 성화를 받아들 때 그의 새하얀 부츠는 여전히 이상의 몸을 지탱했고 창공에 흩날리는 불꽃 아래 꼿꼿한 자유(自由)의 여신을 춤추게 했다. 이를 북에서 온 손님도 지켜봤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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