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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 日 戰國시대 최고 영웅

바람아님 2018. 3. 9. 06:42

(조선일보 2018.03.09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전국(戰國)시대

3걸(傑)이라고 한다. 이들 중 일본인에게 가장 인기 높은 인물은 누구일까?

현대 일본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노부나가가 앞서고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그 뒤를 쫓는다.


노부나가가 예전부터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군림하다가 부하에게 배신당해 중도에 좌절한 재승박덕 지도자의 이미지였다.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전후(戰後) 일본의 고도 성장기였다. 일본 기업들, 특히 종합상사가 세계를 누비던 시절에

노부나가의 파란만장한 삶은 진취성, 결단력, 세계를 꿰뚫어보는 안목,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 개혁성,

새것을 수용하는 개방성의 아이콘으로 포장돼 선풍적 인기를 모았고, 그 여세가 아직 남아 있다.


반면 메이지 시대 일본 제일의 영웅은 히데요시였다.

당시 히데요시의 높은 인기는, 평민 출신으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그의 입지전(立志傳)이 대중에게

어필한 면도 있지만 정치적 입김의 영향이 컸다. 에도막부를 뒤엎고 탄생한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조슈(長州)와

사쓰마(薩摩)는 역사적으로 도쿠가와 가문에 반감이 있었고 히데요시에게 동정적이었다.

유신 후 삿쵸(薩長)의 정서를 반영해 의도적인 이에야스 깎아내리기와 히데요시 띄우기가 성행하면서

이에야스는 배신, 비정, 교활의 이미지로 덧칠됐고, 히데요시는 사회 변혁기 능력 본위 신분 상승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현대 일본 역사가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명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실증적 견지에서 역사를 보면 260여 년간 지속된 평화·번영의 기초를 닦은 이에야스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어떤 영웅은 시대를 초월해야 비로소 그 진가를 음미할 수 있다.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평가는 후세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