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웬 존, 어깨를 드러낸 소녀의 초상, 1909∼1910년
가냘픈 처녀의 벗은 몸을 그렸다. 쇄골이 드러난 앙상한 어깨, 힘없이 늘어뜨린 가늘고 긴 팔, 작고 여윈 젖가슴, 텅 빈 눈동자에
서린 슬픔이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에는 그웬 존 화풍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의 내면세계가 반영된 심리적인
누드화를 말한다. 그웬 존이 활동하던 시절 여성 누드화는 남성 화가의 몫이었다. 여성 누드화는 남성의 성적 환상과 지배욕,
관음증을 자극하기 위한 용도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웬 존의 누드화는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젊은 여성의 벗은 몸인데도 왜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누드를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옷을 벗는 행위는 제도와 관습에서 자유로운 정신, 순수하고 결백한 본연의 존재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의미한다. 즉, 여성의
몸이 남성의 성욕의 대상이 아닌, 여성 자신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누드화를 그렸다는 뜻이다.
그림을 보면서 전혜린의 에세이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에 나온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가시를 하나 품고 있다. 내 가슴의 가장 깊은 곳에. 때때로 난 그곳이 아픈 것을 느낀다. 그러면 난 아주 아주 홀로 가장
어두운 방속에 있고 싶어진다. 거기서 촛불이 타는 것을 바라보고 싶다.’
나는 혼자일 때 진정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자각을 그림과 글로 증명했던 두 여성 예술가를 추모하고 싶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으니까.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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