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엔 당시 유학 중이던 24세 청년 안창호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외국인을 볼 때마다 민족의 초라함을 느꼈던 도산 안창호는 직접 세계를 보려 했다. 안창호는 “한국 민족은 ‘우물 안 개구리’”라며 “귀국하면 민족을 계몽하기 위해 교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100년 뒤 ‘한국인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말하는 70대 미국인이 나타났다. 미국 브리검영대의 한국학 교수인 마크 피터슨 박사. 그는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역사의식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고 말해왔다.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지나치다 보니 미래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는 취지였다. 은퇴 뒤 만들고 싶다는 한국학 연구소의 이름은 ‘정외와(井外蛙)’, 즉 ‘우물 밖 개구리’다. 두 사람이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는 좀 다르다. 공통점은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백성과 여론을 우물 안에 가두는 것은 그 시대를 지배했던 권력층이었고, 희생은 늘 백성의 몫이었다는 사실이다. 2018년 6월 우리는 우물의 안팎 중 어디에 있나. 적어도 경제 문제에선 글로벌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최근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론이 공격받자 자영업자 등의 소득 감소치를 빼는 ‘분식(粉飾)통계’까지 하며 국민의 눈을 가렸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으로만 11조 원의 혈세를 쏟아부어 간신히 3%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놓고는 우리 경제가 살아난 것처럼 홍보전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근 청년실업률을 분석해봤다. 대다수는 급속도로 개선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2014년 10.0%에서 2017년 10.3%로 나빠졌다. 회원국 35개국 중 청년실업률이 늘어난 곳은 한국, 터키 등 4개국뿐이다. 2010년대 초반 청년들의 처지를 동정해 유행했던 말이 ‘헬(hell·지옥) 조선’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니 20대 청년실업률은 2012년 5월 8.2%였는데, 6년 뒤인 지난 4월 10.7%로 올라갔다. ‘헬 조선’ 아래에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웃 나라를 보자. 일본에선 완전고용 얘기가 나온다. 우리가 말로만 혁신성장을 떠드는 사이 중국은 한국의 첨단 산업을 추월하고 있다.
최근 ‘우물 안 개구리’ 얘기를 꺼낸 이가 한 사람 더 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페이스북에 “우물 안 개구리의 시야를 가지고 우리 기업들을 매도하는 데 열중하다 보면 경제 생태계는 외국 자본에 유린될 것”이라며 글로벌 시각으로 넓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의장의 말대로 우리는 거대한 글로벌 흐름을 놓치고 또다시 우리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온 나라가 똘똘 뭉쳐서 어떻게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판에 대기업과 오너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일부의 시대착오적 갑질과 불법 행태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이 흔들리고, 특정 기업의 역사 자체가 매도되는 수준까지 간다면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가 기업의 애로를 직접 들으면 어떨까. 북한도 용서하고 끌어안는 마당에 대한민국 누구의 손을 잡지 못할까.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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