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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8] 전재용 선장과 예멘 난민

바람아님 2018. 7. 4. 09:23
조선일보 2018.07.03.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985년 11월 중순 원양어선 광명 87호를 이끌고 귀항하던 전재용 선장은 남중국해를 지나다 베트남 난민을 실은 작은 난파선을 발견한다. 상관하지 말라는 회사의 지시로 그들을 지나쳤지만 전 선장은 끝내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뱃머리를 돌린다. 사흘이나 굶은 난민 96명에게 25명 선원들의 식량과 물을 나눠주며 열흘 만에 간신히 부산항에 도착했다.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채 무려 25척의 배를 스쳐 보내야 했던 베트남인들은 전 선장의 따뜻한 배려로 목숨을 구했다. 반면 전 선장은 부산항에 도착하자마자 해고당해 고향 통영에서 멍게 양식업을 하며 살았다. 2004년 난민 대표 피터 누엔이 전 선장을 수소문해 19년 만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해후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내가 전 선장님과 함께 한국 사람이라는 게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의인상은커녕 회사에서 쫓겨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았지만 그는 여전히 "96명의 생명을 살린 저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 519명이 들어왔다. 김대중 정부가 제정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비자가 없어도 입국해 최장 30일까지 머물며 난민 지위를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온 것이다. 1651년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다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 헨드릭 하멜 일행과 달리 이번에 예멘인들은 제주도를 목표로 노를 저었다. 대부분이 건장한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취업 난민'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33년 전 바다 한복판에서 난민을 구해 우리 땅으로 데려온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난민 수용소에서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보살핀 후 미국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싶은 2018년 대한민국이 우리 땅까지 노 저어온 난민을 그냥 내칠 수는 없다. 일단 따뜻하게 보듬자. 그리고 함께 공존의 길을 찾아보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