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국무위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모노드라마를 연출해 달라.' 김대중 정부의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연극배우 손숙 선생이 자질 논란에 휩싸였을 때 내가 쓴 글의 일부다. 하지만 이 글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내가 글을 다듬던 와중에 그가 한 달여 만에 사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장관 중에서 환경부 장관만큼 외로운 자리가 또 있을까? 모두가 경제 살리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국무회의에서 홀로 감히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자리. 환경 파괴가 염려되는 개발 계획에 분연히 반기를 들어야 하는 자리. 오죽하면 내가 연극배우 장관에게 기대를 걸었을까?
역대 환경부 장관 중 두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재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자 장관과 국립생태원장 시절 내가 모시고 일했던 윤성규 장관. 김명자 장관은 학자 출신이라 행정 능력에 의심을 받았지만 끝내 역대 최장수 환경부 장관으로 우뚝 서며 환경부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규제의 부처에 기초 연구의 뿌리를 내린 과학자 장관이었다.
반면 윤성규 장관은 전형적인 관료 출신으로 시민사회와는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꼼꼼하게 내실을 다진 행정가 장관이었다. 임기 내내 주말도 마다치 않고 환경 관련 기관과 현장을 돌며 세세하게 조직을 다졌다.
나는 이 두 분과 더불어 김은경 장관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발발이 장관'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국회와 학계 그리고 환경문제의 당사자인 시민들을 만나려 쉼 없이 뛰어다닌다. 환경문제는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해결책을 내놓으라 다그치면 오히려 꼬일 수 있다. 소통과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 시민단체들이 김은경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그가 시민과 자연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또 한 분의 장수 장관이 되길 기대한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8] 전재용 선장과 예멘 난민 (0) | 2018.07.04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7] 개미 침공 (0) | 2018.06.27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4] BMW의 꿈 (0) | 2018.06.06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3] 갑질과 갑티 (0) | 2018.05.30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2] 쪼끔 촌스러운 회장님 (0) | 2018.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