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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4] BMW의 꿈

바람아님 2018. 6. 6. 11:39
조선일보 2018.06.05.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나는 이른바 '금수저'도 아닌데 신기하리만치 재물에 욕심이 없다. 이 나이 먹도록 돈을 벌겠다며 아등바등 살지 않았는데 그럭저럭 잘살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휴대폰 새 모델이 나왔다고 달려나가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와는 거리가 멀고, 평생 양복 정장 한 벌 없이 살았다.


이런 내게도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1979년 유학길에 난생처음 외국 비행기를 탔다. 무심코 앞 좌석 등받이에 꽂혀 있는 항공사 잡지를 펼쳤는데 언덕 위로 올라오는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BMW 02시리즈였는데 나는 그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도대체 자동차가 그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그 순간 나는 인생 목표를 정했다. 미국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여 성공하면 꼭 그 차를 한 대 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흐른 후 나는 미국의 명문 미시간대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첫 월급을 받아 들고 과연 BMW를 살 수 있을까 아내 몰래 계산해봤다. 아무리 중고라도 조교수 월급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부교수가 되면 사리라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은퇴가 바로 코앞이건만 나는 아직도 BMW를 탈 형편이 못 된다. 이제 그 꿈을 접었다. 어차피 요즘 나오는 BMW는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릴 가운데 문양이 너무 양옆으로 펑퍼짐하게 퍼져 있어 천박하다. BMW 02시리즈의 그릴 문양은 위아래로 좁다란 게 날렵하고 우아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훨씬 더 아름다운 BMW(Bus-Metro-Walk)를 타고 다닌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의 매일 왕복 7㎞를 걸은 지 5년이 넘는다.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갈 때면 언제나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지방 일정이 생기면 제주도가 아닌 한 거의 무조건 KTX를 탄다. 특히 시내버스는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지만 어느덧 우리 대중교통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다. 나는 끝내 BMW 꿈을 이뤘다. 지구도 지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