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붉은불개미'의 한반도 침공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가을 부산항에 이어 이번에는 서해안 평택항에 나타났다. 기자들의 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치고 있지만, 나는 작년 추석 연휴를 송두리째 빼앗긴 기억을 되살리며 이번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고 있다. 연휴에 쉬지 못한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자문에 응한 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름부터 그르다. 독성이 기껏해야 꿀벌 정도라는 내 지적에 '붉은독개미'라는 이름을 포기한 건 다행인데 동물 분류학 전문가도 없는 정부 위원회가 선택한 '붉은불개미'도 당최 글렀다. 개미 과(科)에서 가장 큰 아과(亞科)가 불개미아과와 두마디개미아과인데 '붉은불개미'는 불개미아과가 아니라 두마디개미아과에 속한다. 이미 같은 속(屬)의 열마디개미(Solenopsis fugax)와 일본열마디개미(S. japonica)가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데 근연종을 엉뚱하게 불개미로 부르는 것은 정부가 학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는 개미학자로서 '붉은열마디개미(S. invicta)'로 부를 것을 다시 한 번 정중히 제안한다.
불과 한 달 전 일본 개미학자 쓰지 가즈키(Tsuji Kazuki)가 붉은열마디개미 퇴치 요령을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게재했다. 일단 군체(colony)를 발견하면 반경 4~6㎞ 지역에 걸쳐 적어도 3년간 전문가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콩기름에 비빈 옥수수 가루나 소시지 미끼를 30m 간격으로 설치하며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비전문가들이 부두 바닥에 독극물을 뿌려대는 걸 이미 항구를 빠져나간 개미들이 비웃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 몇 사람에게 3년간 연구비를 제공하는 게 번번이 방역팀을 꾸려 법석을 떠는 것보다 돈도 훨씬 덜 든다. 거의 80년 전에 뚫린 미국은 지금 해마다 무려 1조원을 방제·보상 비용으로 쓰고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말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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