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노무현 트라우마'에 갇힌 경제

바람아님 2018. 7. 14. 08:21
문화일보 2018.07.13. 14:20



文, 기업 관계개선 언급하자

지지층서 ‘깜빡이’ 논쟁 재연

집권 2년차 덫에 걸릴 우려

위기인식 있지만 결정 장애

좌고우면하면 또 실패 자초

국정 기본은 民生, 결단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인도 방문 중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국내 대기업 CEO들 앞에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언급했다고 한다. “기업과 소통을 강화하라”는 주문이 있었으니 그동안 소원하던 기업들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잔뜩 움츠리고 있었을 현장의 CEO들뿐만이 아니라 모디 총리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는 정부 개입을 강화해온 문 대통령과 달리 친(親)기업이어서다. 역설적이게도 더 흔들린 건 문 대통령 지지층이었다. 경제 운용 기조가 바뀔 것 같다는 분석 기사마다 실망을 넘어 분노하는 인터넷 댓글이 난무했다. 그 발언이 나온 날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급락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깜빡이 논쟁’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평균 7%의 성장률 달성을 약속했지만, 취임 첫해인 2003년 경제성장률은 3.1%로 전년 7%의 반 토막이 났다. 일자리는 3만 개가 줄었다. 기업들을 겨냥해 독전(督戰)한 결과였다. 이듬해 벽두부터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기조를 바꿨다. 노동계 시위에 강경 대응을 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했다. 그래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는 비난을 샀다.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은 최우선 경계사항이었다.


물론 그 시절과 현재 상황은 많이 다르다. 지금은 첫 중간 선거에서 압승한 정권이다. 문 대통령이 “두렵다”고 책임의 무게를 표현할 정도로 더는 핑계 댈 게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하지만 집권 2년 차의 덫에 걸려드는 게 확연해 보인다. 그 빌미가 정권 성패의 제1 기준인 경제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한국은행은 12일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9%와 2.8%로, 지난 4월에 내놓은 것보다 0.1%포인트씩 낮췄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3.8%, 교역신장률은 4.1%로 예상했다. 지난해 5월 정부 출범 당시 세계 경제 호황기에 집권한 게 ‘천운’이라고 치켜세운 사람이 많았는데, 스스로 그 운까지 차버리는 국면이 됐다.


이를 권력 핵심들이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런데, 내부 노선 갈등에 진정성이 있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소득주도·혁신·공정의 세 가지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정부 성패는 경제 문제 해결에 달렸고,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인데 위기감이 크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론을 수정한다거나 공정 경제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각 부처와 규제 기관들은 여전히 제동장치가 고장 난 탱크처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상법 개정안 등도 그대로 진행 중이다.


김 위원장은 10개월 전 ‘파워인터뷰’에서 “참여정부는 조급하게 생경한 수단으로 기업인들을 몰아쳐 재벌개혁에 실패했다”면서 “개혁은 예측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참여정부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또 “정부 개입 과잉을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도 했었다. 이제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기업을 옥죄면서 일자리를 늘리라는 게 교훈에 따른 방식인가. ‘일자리 정부’라면서 일자리에서 사달이 나는 것도 정상 신호로 봐야 하는가. 정부 과잉을 제어할 시점이 아직도 이른 것인가. “답답하다”고 한 대통령의 말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은 지경이다.


트라우마의 일반 증상은 과민하게 경계하고, 집중해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드센 지지층과 엄중한 현실 사이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현 정부가 딱 그렇다고 하면 과한 억측일까. 그 병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깜빡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정의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민생(民生)이다. 기업도 민생과 별개가 아니다. 수출, 내수 가릴 것 없이 모든 경제 지표들이 빨간불을 켜고 있는데,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라고 하거나 전 정부 탓으로 둘러대는 것은 민생 기만이다. 죄다 각설하고, 동네 편의점주들이 ‘나를 잡아가라’는 피켓을 드는 것 하나만 봐도 민생은 진짜 위기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