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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묵자(墨子) (5) 묵자가 문화예술을 반대한 까닭은?

바람아님 2018. 7. 20. 16:15

(매경이코노미 2015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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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새로운 유행어가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새마을호’

‘새마을다리’ ‘새마을길’처럼 ‘새마을’이 유행했다. 또 일반 국민이 경제적인 빈곤으로 겪는 생활상의 고통을 가리키는

‘민생고(民生苦)’가 널리 쓰였다.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민생고를 해결하겠다고 덤비자, 나중에는 용변을 보느라

이리저리 화장실을 찾다 급한 불을 끄거나 밥을 먹은 뒤에도 “민생고를 해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 다시 ‘민생고’와 ‘새마을’이라는 낱말이 부쩍 많이 쓰이는 걸 보면 우리네 삶의 현장에 고쳐야 할 것도 많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은 모양이다. 춘추전국시대 묵자도 오늘날 민생고와 비슷한 말을 만들어냈다.

세 가지 고통을 뜻하는 ‘삼환(三患)’이란 말이다.

묵자는 당시 서민들이 “배고프지만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고, 춥지만 제대로 옷을 입지 못하고, 힘들지만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民有三患, 饑者不得食, 寒者不得衣, 勞者不得息)”며 삼환의 고통이 막심하다고 주장했다.

삼환에는 생활하는 집이 들어가지 않지만 밥, 옷, 휴식은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된다.

묵자는 삼환이 해결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 또는 문제적인 상황을 비판하면서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우리는 성장과 복지의 틀로 삼환의 민생고를 해결하려고 한다.

성장론자는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부가가치가 늘어나므로 서민도 그 과실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

지론자는 어려운 여건에 있는 서민에게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쳐서 자활의 터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민들은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성장과 복지의 정책에 기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자구책을 마련한다.

대표적인 자구책이 바로 절약 또는 긴축이다.


묵자는 성장, 복지, 절약 중에서 절약의 길을 강조했다.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인가 복지인가?’라는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절약’을 삼환의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길로 선택한 만큼, 묵자는 절약을 적용할 수 있는 사회 분야를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우선 행정 분야에선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절용(節用)을 말했다.

호화롭고 장기간에 걸친 ‘후장구상(厚葬久喪)’을 치러 후손들이 고통을 겪거나 사회적으로 허례허식을 조장하는 일을

피하자는 절장(節葬)도 말했다. 절용은 묵자만이 아니라 그의 선배 공자도 이미 말한 바가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 절장은 다소 복잡한 문제였다. 경제적 비용만이 아니라 사후 세계나 영혼 등 종교 문화와 관련돼

호화로운 장례를 부정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자는 후장구상이 고대의 전통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굳건하게 절장론을 펼쳤다.


절약을 향한 비판의 화살은 행정과 장례에 국한되지 않았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활동 전반에도 이어졌다.

바로 예술활동을 중지하자는 비악론(非樂論)이다. 훗날 묵자 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비악론에는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아무리 비용 절감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인간다운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문화예술을 부정한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봤다. 나아가 비악을 주장한다면 절약이라는 이름으로 도대체 어디까지 중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비악에 대한 반론은 분명히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묵자의 비악을 무턱대고 비판하기 전에 그의 구체적인 주장을 들어보고 왈가왈부해도 늦지 않다.


묵자는 제일 먼저 위정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임무를 정의했다.

그는 위정자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오고 피해를 없애야 한다(仁人之事者, 必務求興天下之利, 除天下之害)”고 봤다.

이 임무는 훗날 ‘흥리제해(興利除害)’로 압축돼 널리 쓰이게 됐다.

아울러 위정자는 재물을 “자신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귀에 즐겁게 들리며 입에 달게 느껴지고 몸에 편하게 지낼 수 있는

(目之所美, 耳之所樂, 口之所甘, 身體之所安)” 방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위정자가 쓰는 재물은 세금을

거둔 것이고 그 세금은 민(民)이 입고 먹어야 할 재물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세금이 공적 목적에 쓰이지 않고 사적 쾌락에

쓰이면 결국 위정자는 민의 재산을 약탈한 셈이 된다. 이에 따르면 묵자가 앞으로 철저하게 흥리제해의 관점에서 비악론을

펼쳤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첫째, 음악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효용론이다.

묵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면 먹고 입을 재물이 생기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요즘은 아이돌 그룹이 한번 뜨면

큰 인기를 얻을 뿐 아니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최근 문화예술도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자식이

연예인이 된다고 하면 부모들은 대부분 ‘돈 안 되는 일’을 하려 한다며 극력 반대했다.

묵자의 주장도 이 같은 부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문화예술활동에 들어가는 비용 문제다.

문화예술은 오랜 연습과 교육을 통해 실력을 갖춰야 하는 등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한 나라가 정기적으로 음악과 무용 공연을 하려고 하면 왕립 기구를 설치해 악기를 제작하고 악인을 육성해야 한다.

특히 공연을 하려면 악인(樂人)들은 비단으로 수놓은 화려한 옷을 입고 예쁘게 꾸며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식량을

생산하지도 전쟁을 막지도 못하는 무용한 일인데 여기에 비용을 허비하는 게 아깝다는 것이 묵자의 생각이었다.


셋째, 사회 분업 원칙에 어긋난다. 동물은 옷이 없어도 털로 살 수 있고, 맹수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사냥으로 살 수 있다.

반면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노동을 하면 살 수 있지만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賴其力者生, 不賴其力者不生).”

묵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아주 독특하게도 사람을 노동하는 존재로 봤다.

이에 따르면 관리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 국사를 처리하고 농부는 일찍 들에 나가서 일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와 쉰다.

이와 달리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악인은 노동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존재라고 묵자는 본 것이다.


넷째, 위정자의 경우 공연이 국사를 방해한다.

위정자가 공연을 개최할 때 혼자 즐기면 재미가 없으므로 자신을 비롯해 숱한 사람을 초청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위정자는 위정자대로, 관리는 관리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할 일을 내팽개치게 된다.

고대의 공연은 음주가무를 종합적으로 즐기는 형태로 진행된 만큼 하루 종일 또는 밤낮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한 나라의 정치가 문화예술 공연 때문에 중단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묵자는 다양한 이유로 지금은 문화예술의 쾌락을 즐길 때가 아니라며 비악을 주장했다.


묵자는 문화예술이 주는 쾌락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북과 종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나무에 새기고 옷에 수놓은 문양이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볶고 구운 고기 요리가

입에 달고, 누각과 별장이 몸에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묵자는 문화예술이 ‘미락감안(美樂甘安)’의 쾌락을 가져온다고

해서 즐길 수는 없다고 봤다. 문화예술의 낭비는 과거 성왕들이 몸소 보여준 언행에 들어맞지 않고 백성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우리는 묵자가 낮은 생산력 때문에 일시적으로 예술을 반대한 것인지 아니면, 원천적으로 반예술적인 사상가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묵자는 ‘물먹는 하마’마냥 돈을 펑펑 쓰기만 하는 왕실의 퇴폐적이고 낭비적인 예술을 반대했다

(묵자가 시대의 한계로 인해 근대 이후 산업화된 문화예술을 몰랐던 점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만일 노동과 친화적이며

생산적인 문화예술이 가능했다면 묵자는 여전히 비악을 고수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묵자가 특히 왕실에서 이뤄진 문화예술활동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묵자가 일터에서 노동의 능률을 높이거나 즐겁게 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 즉 노동요(勞動謠)를 반대할 리는 없다. 싸움터에서 병사의 전투력을 연마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여흥시간에 검무(劍舞)를 추는 것도 반대할 리 없다.


이렇게 본다면 묵자는 낭비적인 문화예술을 반대하기 위해 비악을 주장했지만, 사실은 노동과 친화적인 목적적 예술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도 묵자와 같은 예술관을 가진 사람은 소수일까 다수일까.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03호(2015.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묵자(墨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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