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호프집 미팅 각본

바람아님 2018. 7. 28. 07:17

(조선일보 2018.07.28 안용현 논설위원)


2016년 4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서민 물가를 챙긴다며 쓰촨성의 한 시장을 방문했다.

정육점에서 "장사가 잘되느냐"고 물었더니 "평소엔 잘되는데 오늘은 한 근도 못 팔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총리 경호 때문에 손님들이 시장으로 못 들어온다는 것이다.

총리가 "그럼 제가 네 근 살게요" 하자 주인은 "팔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경호원들이 (고기 썰) 칼까지 죄다 걷어 갔다"는 하소연이었다.

리커창이 이어 찾아간 과일 가게의 앵두 가격은 1㎏에 3위안(약 500원)으로 적혀 있었다.

실제는 30위안이었지만 상인으로 가장한 공무원이 '0'을 뺐다.

이런 '시찰 쇼'의 진상은 SNS 덕분에 공개됐다.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원을 지낸 인사는 "시장이나 농촌 시찰 전에 질문할 사람은 물론 질문 내용도 미리 정했다"고 했다.

안기부 직원을 시장 행인 등으로 꾸몄고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 때 손뼉 치라는 것까지 각본을 짰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선 경호실에서 대통령의 동선(動線) 정도만 사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물상] 호프집 미팅 각본

지난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한 토크 쇼에 출연해 자신의 열두 살 적 사진이 스크린에 나오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오!" "세상에" 등을 연발했다.

그러나 방송에 앞서 모든 질문과 형식을 파악하고 답변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배우 출신인 레이건 전 대통령도 "정치가 쇼 비즈니스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맥주 타임'을 가졌을 때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배모(27)씨가 대통령과

건배했다. 애초 청와대는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오는 줄 모른다"고 했다.

그래야 대통령이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배한 청년이 작년 3월 한 빨래방에서 '군무원 준비생'으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만나 소주까지

마셨던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청와대는 "배씨만 대통령 참석을 알았다"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는 작년 8월에도 수석비서관급을 모아 놓고 '대국민 보고 대회'를 열면서 "어디서 질문이 나오고 어디서 답변이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과 답변의 각본이 모두 짜여 있었다.

시중에선 이번엔 탁현민 행정관이 실수했다고 한다. 멋진 쇼도 자꾸 보면 지겨워진다.

그 전에 싫은 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진짜 소통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