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7.31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이아손을 사랑한 메데이아 공주, 祖國과 家族마저 버렸지만 권력에 눈먼 이아손은 아내 배신
뜨거운 욕망과 치열한 태도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 낳아 "지나침 없는 중용이 最善"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사랑이 전부인 여자가 있다. 흑해 동쪽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다.
그녀의 남자는 그리스 땅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다.
그는 콜키스를 지키는 수호 성물인 황금 양털을 가지러 왔다.
그것을 조국으로 가져간다면, 그는 빼앗겼던 왕권을 되찾을 수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씨 다른 형제 펠리아스에게 왕권에서 쫓겨났는데, 그 이후로 그는 왕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숙명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흔히 욕망하던 것을 얻으면 행복하리라 믿고, 그 욕망에 치열하게 매달리곤 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격렬한 이기적인 욕망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며, 행복의 다른 조건을 묻는다.
이아손이 콜키스의 황금 양털을 가져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콜키스의 왕이 순순히 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을 내뿜는 용이 그것을 지키고 있다. 포기할 수도, 차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아손이 신음하고 있을 때,
메데이아가 다가왔다. '황금 양털을 차지하도록 도와드리겠어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저를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세요.' 이아손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랑에 대한 메데이아의 욕망을 이용한다면,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메데이아의 계산도 비슷했다.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을 이용한다면, 그를 차지하고 사랑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것.
둘의 욕망과 계산이 맞아떨어졌고, 행복은 성취될 것만 같았다.
메데이아는 마법으로 용을 잠재우고 조국의 수호 성물을 빼내어 이아손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황금 양털을 되찾으려고 군대를 이끌며 추격하던 아버지를 따돌리려고 제 오라비마저 죽여 토막 낸 시신을
던지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경악했고,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피를 토하듯 오열했다.
그녀는 사랑의 욕망에 눈멀어 그녀가 예전에 사랑했고 아꼈으며, 그 어떤 경우에도 마땅히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했던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욕망에 눈이 멀었던 것은 이아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 양털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그토록 열망하던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펠리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부의 배신에 이아손은 허탈하고 절망했다.
그때 메데이아는 펠리아스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잔혹하게 실행했다.
그녀가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이아손은 모르는 척했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메데이아가 삼촌을 죽이도록
방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다.
펠리아스 왕이 메데이아의 계략으로 죽었지만, 이아손은 왕좌에 오를 수가 없었다.
도리어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조국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이제 곧 메데이아도 이아손에게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해악을 끼치며 파국적 결말로 치닫는 곳은 이방의 땅 코린토스였다.
절망스러운 방황 끝에 두 사람이 도착한 그곳에서 이아손은 뜻밖의 기회를 얻는다.
코린토스의 왕이 그를 사위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메데이아를 위해서라면 이아손은 마땅히 거절해야 하지만, 이아손은 권력에 눈이 멀어 남편의 도리를 저버린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는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메데이아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배신이고 모욕이다.
그녀는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땅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반면, 남자는 수많은 축하를 받으며 코린토스의 왕궁으로
새 장가를 갈 판이다. 가슴이 터지고 온몸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메데이아는 남편을 빼앗으려 했던 코린토스의 왕과 공주를 불에 타 죽게 하고, 이아손과 자기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의 목숨을 번뜩이는 칼로 끊는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욕망에서 철저히 거세되고 배제되었다.
두 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벌어질 비극적 결말을 예견한 듯, 메데이아의 유모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하지 않아도 좋으니, 탈 없이 늙어갈 수만 있다면 좋겠어.
중용이 인간에게 최선이거든. 지나친 것은 유익하지 않아."
너무 뜨거운 욕망, 지나치게 치열한 삶의 태도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낳을 수 있음을,
평범하고 소박한 유모는 슬기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치열한 삶을 강요받는 현대의 삶 속에서 행복의 또 다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나치지 않고 적절하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뚜벅뚜벅 해나가는 삶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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