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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는 나라 ‘21세기 아마조네스’ 체류기

바람아님 2018. 8. 1. 07:08

한겨레 :2018-07-19 20:13


지구상 마지막 가모장사회 모쒀족
여성에게 중요한 건 지성·축제·연애
자유연애-안정된 가정 공존 ‘별천지’
결혼의 본질, 사랑의 완성에 대한 물음

어머니의 나라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흐름출판·1만3800원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이승연 지음/스리체어스·1만2000원


여성이 가장인 모계 사회가 동시대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모장 사회로 알려진 모쒀족. 중국 윈난성 루구호 주변에서 살아가는 모쒀인들은 가모장 할머니를 중심으로 엄마, 이모, 자매형제, 이종사촌, 이들의 남자 형제 등이 가족을 이룬다. 가장은 여성이지만 양성은 평등하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픽션이지만 <어머니의 나라>는 논픽션이다.


어머니의 나라, 아버지가 없는 나라. 모쒀족 마을에 6년 넘게 살면서 ‘전통이라는 가능성’을 찾은 추 와이홍은 세계 최상위 로펌에서 일하던 싱가포르 변호사다. 가부장제가 견고한 싱가포르 사회와 남성중심적인 법조계에서 성공한 이 여성은 어떻게 최고의 고문변호사 자리를 떠나 모쒀에 정착하게 됐을까.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나 같은 싱글 여성이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인간다운 삶의 필수 가운데 하나는 가사노동이다. 남자들과 달리 집안일을 해결해줄 아내 없이 성공도 하고 인간답게도 산다는 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추 와이홍은 모쒀에서 더 나아진 삶을 만난다.

모쒀 여성들은 밤새 춤추고 노래하는 파티를 즐긴다. 봄 축제가 열려 전통 의상을 빼입은 모쒀 여인들. 흐름출판 제공
모쒀 여성들은 밤새 춤추고 노래하는 파티를 즐긴다. 봄 축제가 열려 전통 의상을 빼입은 모쒀 여인들. 흐름출판 제공
모쒀 가모장은 방 안에서 더 좋은 자리인 여자 쪽 자리 중에서도 가장 상석인 난롯가에 앉는다. 난로를 지피는 불씨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흐름출판 제공
모쒀 가모장은 방 안에서 더 좋은 자리인 여자 쪽 자리 중에서도 가장 상석인 난롯가에 앉는다. 난로를 지피는 불씨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흐름출판 제공

 
신도 가장도 여성인 세계에서 자란 딸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모쒀 여성한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지성, 파티, 연애! 우선 엄마가 딸에게 가장 높이 사는 가치는 지력이다. 가장의 지위를 물려받아 가정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모쒀 여인들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특징이라고 한다. 치장은 많이 하지 않는다. 이들이 연애 상대를 고를 때 특징 둘. 첫째, 재력을 신경 쓰지 않는다. 둘째, 책임감이 강한 성격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럴 만한 사회적 토대가 있다. ‘결혼’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이 서로를 독점하는 형태의 가정을 꾸리지 않으므로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모쒀 남성들은 대부분 건장하고 꾸미기 좋아하며 자신감 넘친다. 노래와 춤 실력은 기본! 위축된 남성은 거의 없다. 흐름출판 제공
모쒀 남성들은 대부분 건장하고 꾸미기 좋아하며 자신감 넘친다. 노래와 춤 실력은 기본! 위축된 남성은 거의 없다. 흐름출판 제공


아들들의 모습도 눈부시다. 우선, 모계 가족과 자라는 모쒀 남성은 일찍부터 집안일과 육아를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지은이는 “언젠가 한 모쒀 할아버지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러 갔는데 그가 손녀딸 쌍둥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치장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꾸밀수록 남성미를 풍긴다고 여긴다.

 
자신만만한 여자와 스타일리시한 남자. 이들의 결합은? 가장 ‘충격적’인 특징부터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선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자유로운 연애와 안정적인 가정을 모두가 평생 누린다. 여성과 남성 구성원이 함께 노동하는 가족농장과 공유재산으로 생계가 보장되고 육아는 온 가족이 함께 한다. 그러니, “모쒀인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연인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인생에서 연애를 아주 높은 순위로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은 사적 영역에 머무는 감정이고, 무엇보다 가족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다.”

모쒀식 집 안에 들어서면 보이는 가모장의 방. 색조가 다채롭고 장식이 화려하다. 총천연색 천장이 핵심이다. 흐름출판 제공
모쒀식 집 안에 들어서면 보이는 가모장의 방. 색조가 다채롭고 장식이 화려하다. 총천연색 천장이 핵심이다. 흐름출판 제공
모쒀족이 섬기는 여신인 ‘거무산신’ 축제를 즐기는 모쒀족 여인들의 모습. 흐름출판 제공
모쒀족이 섬기는 여신인 ‘거무산신’ 축제를 즐기는 모쒀족 여인들의 모습. 흐름출판 제공


‘사랑의 모양’은 더 충격이다. ‘걷는 결혼’이라는 뜻의 주혼 개념이 있다. 성적 결합이자 연애이지, 결혼은 아니다. 모든 딸에겐 ‘꽃방’이 주어지는데,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이 자기만의 방으로 밤이면 남자가 ‘걸어’ 들어오기 때문에 생긴 개념이다. 꽃방을 나서는 순간 연인(아샤오)은 ‘내 것’이 아니다. 사랑을 굳이 제도에 가두지 않지만 “중년은 대체로 한 명의 오랜 아샤오에게 정착하여 ‘게피에 세이세이’(공개적 주혼)를 유지한다.”

 
프랑스에서도 결혼만이 결합의 형태인 건 아니다. 배우자 계약을 한 이성 또는 동성 커플이 혼인과 동등한 수준의 사회보장 제도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팍스(PACS)가 대표적인 예. 프랑스인 남편과 팍스를 맺은 디자이너 이승연씨는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에서 말한다. “결혼의 본질은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고 이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다양한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는 문화도 만들어진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