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04 곽창렬 사회정책부 기자)
곽창렬 사회정책부 기자
얼마 전 만난 대형 노조 현직 고위 간부는 "우리가 할 일이 없다. 정부가 다 해주니…"라며 크게 웃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는 오래전 대기업에 입사한 뒤 얼마 안 돼 노동운동에 투신해 30년 넘게 노동 현장에
있다. 그런데 그는 "요새처럼 편한 때가 없다"고 했다. "월급 올리고, 쉬는 시간 더 얻으려고 싸우는
게 노조 임무인데, 지금은 할 게 없어요. 정부가 대신해 다 해주니…."
작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가장 변화가 큰 분야 중 하나가 '노동'이다.
출범 직후 지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고용노동부는 위원회 하나를 만들었다.
90여명에 가까운 고용부 공무원이 이 위원회에 불려갔다.
고용부 본부 직원이 총 57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직원 여섯 명 중 한 명이 조사를 받은 셈이다.
전(前) 정부 시책에 따라 대기업이 노조를 파괴하고, 불법 파견을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에 유리한 정책과 판단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고용부는 올 들어 한국GM과 파리바게뜨 같은 대기업이 불법으로 사내 하도급 근로자들을 파견받아 썼다고 판단했다.
최저임금도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올해 16.4%, 내년 10.9%)로 올렸다.
지난 8월에는 최저임금 시급(時給)을 환산하는 방식까지 노동계에 유리하게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대기업도 최저임금에 압박을 느낄 판이다.
고용 문제에 힘을 쏟겠다며 8년 전 '노동부'에서 '고용부'라고 바꿨던 부처의 약칭을 도로 '노동부'로 되돌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인천공항·코레일 등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도 착착 진행 중이다.
이 정부 들어 올해 8월까지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 기관, 지방공기업 등 853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8만50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처럼 노동계는 잘 나가는데, 우리 경제와 청년들은 고용 참사라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월평균 실업자 수(113만여명)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한 해 실업급여로 나가는 돈이 7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제까지 정부·기업과 싸우던 양대(兩大) 노총은 요즘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새로 전환된 근로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라 경쟁하고 있다. 서로를 '어용(御用)'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공격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노총 인사와 밥 한 끼 먹었다가 조직 내부에 사과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일자리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정부에서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다.
노동계 스스로 "호사한다"고 얘기하는 이 태평 시대는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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