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에서 본 한반도>외골수 외교의 함정
문화일보 2018.10.31. 11:50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2014년 9월 15일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 발전 특별위원회 주최로 필자가 재직하는 연구소에서 작성한 ‘맞춤형 관여(engagement) 정책’이라는 남북관계 보고서를 발표하는 공청회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질의·응답 중 당시 그 위원회 소속이던 문재인 의원은 “너무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활발했던 상황으로 하루빨리 되돌아가 그것을 출발선으로 해서 더 과감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참여정부 때도 10·4 정상선언에 대해 유엔총회에서까지도 지지결의가 있었는데, 우리 국회에서 일종의 비준절차를 밟아주지 않은 것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지속 가능한 통일 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양선언의 비준을 강행한 데에는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과속 운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개월 사이 세 번의 정상회담,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 무리한 논리까지 펼쳐가며 강행된 비준, 대북 제재 해제에 올인하는 듯한 정상외교 등 광폭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러한 남북관계 일변도의 함정은 없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만 믿고 있다가 비핵화가 안 되면 한국도 함께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투자로 치면, 기업이 이렇다 할 실적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오너 말만 믿고 올인하는 격이다. 최근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 후 문 정부의 ‘북한 대변인’론이 국내외에서 대두됐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고 대북 제재 공조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 모두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 듯하더니 이젠 제재 해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미국 정부 내 한 고위인사에게 물었다. 그에 의하면, 지난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면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놓고 “종전선언 안 해도 좋다. 대신 먹고살기 힘드니 제재 좀 풀어달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이후에 남북한 모두 종전선언보다 제재 해제에 방점을 두는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어려운 외교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대북 문제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미·중 간 무역 갈등 속에 한국증시는 등락을 거듭하며 추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지경에 이르고 있는 데도 정부의 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한국처럼 (특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무역이 주요 외교·안보 사안이지만 현 정부의 외교 어젠다 중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일 관계에서도 박근혜 정부 당시의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고는 했지만 마땅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30일 대법원의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더 큰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도 가까스로 봉합되긴 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른 채 잠복해 있는데 한·중 관계에 대한 문 정부의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도 북핵 해법에 대한 간극이 국내 언론이 전하는 것보다 더 크며 갈등의 소지도 늘고 있다. 최근 워싱턴, 베이징(北京), 도쿄를 방문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은 한국 대사들의 존재감이 적고 현지 외교관들의 사기는 저하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필자는 4강국 대사들의 전문성이 낮다는 비판에 대해 그래도 문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옹호했는데, 이젠 그럴 자신이 없다. 어쩌면 대사 문제라기보다는 청와대가 북한 문제에 올인하면서 모든 걸 주도하는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일선 외교관들의 사기가 저하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북한에 올인하는 외골수 외교가 아니라 균형 잡힌 외교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전쟁의 위기감 속에 들어선 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평화 수립에 최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그 성과도 인정하지만 이젠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북한이 상수이고, 다른 외교·안보 사안이 종속변수가 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문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은 북한만 바라보지 말고 좀 더 넓고 큰 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기 바란다. -----------------------------------------------------------------------------------------------------------------------------------------------------
‘제재 완화’ 초점 이동 우연일까
對일본·중국·미국 현안 복잡한데
대북 정책에 종속시키면 위험
[김현기의 시시각각] 95세 키신저에 비행기를 태운 중국
중앙일보 2018.10.31. 00:27
중국과 일본 저마다 '헤지외교' 필사적
우린 동맹·우군 외면, 북한에 몰빵하나
#2 지난달 26일 미·일 정상회담장. “자, 그럼 일·미 물품무역협정(TAG) 협상을 하는 동안에는 일본 자동차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것, 맞죠?”(아베 일 총리). 이미 실무협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이었다. 그래도 아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럼프에게 쐐기를 박으려 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정색한 채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노(No)!” 배석한 일본 측 관계자들은 그 순간 얼어붙었다고 한다. 잠시 뜸을 들인 뒤 트럼프는 말했다. “오케이. 아베는 내 친구니까.” 그제야 일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베를 포함한 당시 일본 측 배석자 모두 “트럼프가 언제 또 마음을 바꿀지 모르겠구나”란 생각을 굳히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견원지간이던 중국과 일본이 손잡게 한 일등공신은 당연히 트럼프다. 중국은 ‘럭비공’ 트럼프에게 맞서기 위해, 일본은 ‘보험’을 들기 위해 서로의 지렛대를 찾았다. 미국은 그런 중국을 향해 이달 초 ‘경제 전면전’을 선포했다. 희생을 감수한 전면전이다. 우리가 북한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는 동안 동북아 역학관계는 팽팽 돌아간다.
당장 미국의 미묘한 변화를 보자. 북핵에 올인하는 듯하던 트럼프의 태도가 변했다. 최근 백악관 NSC를 찾은 한 관계자는 “NSC 측 발언의 80%가 중국이라 놀랐고, 북·미 협상에 대한 불만보다 한국에 대한 불만이 커 놀랐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도 문 대통령이지만 청와대 스태프(참모진)들이 과연 미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29일 이례적으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배경일 수 있다. 북·미 간 신뢰를 걱정할 때가 아닌 게다. 진짜 걱정은 한·미 간 신뢰다.
일본과는 30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로 당분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중국과 러시아와는 여전히 뜨뜻미지근한 관계다. 유럽에선 뜬금없는 ‘대북제재 완화 협조 요청’ 발언으로 ‘이상한 나라’가 돼 버렸다. 북한을 빼곤 어느 곳 하나 확실한 우군이 없다. 한·미 동맹이란 뼈대 위에 주변국 외교를 통해 살을 붙여 가는 게 아니라 살을 도려내고 뼈대까지 금가게 하고 말았다.
북한·핵만 볼 때가 아니다. 미·중 냉전의 직격탄은 당장 경제를 통해 온다. 유독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한국 금융시장이 그걸 보여준다. 언제 자동차 고율 관세라는 한 방이 나올지 모른다. 우리 경제가 무너지면 북핵이고 평화고 말짱 도루묵이다. 도와줄 나라도 없다. 중국처럼 키신저를 비행기에 태울 힘도 없다. 그렇다면 미·중 대결 장기화에 대비한, 현실을 직시한 ‘헤징(위험 회피) 외교’가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도 지금은 ‘일단 남북교류!’를 외치며 미국에 맞설 게 아니라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오만한 북한에 ‘너희가 먼저 비핵화!’를 재촉하는 게 온당한 순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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