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원전 밀어붙이는 한국, 탈원전 수정 국민투표하는 대만
조선비즈 2018.11.02. 06:03
대만이 이달 24일 탈원전 정책의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지난 2016년 집권한 민진당에 의해 수립된 탈원전 정책에 대해 국민의사를 묻는 것이다. 당초에는 국민투표 요구가 거절돼 단식투쟁과 법원제소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청원 의사를 존중해 국민투표를 수용했다.
대만은 4기의 원전을 운전중이며 2기는 올해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룽멘 원전은 1999년 건설을 시작했으나 극심한 반(反)원전 시위와 정치적 갈등으로 2014년 준공을 목전에 두고 건설을 중단했다. 룽멘1호기는 시운전까지 마친 상태지만 밀봉 보존중이다. 대만은 2025년까지 탈원전을 전업법(電業法)으로 못박고 있다. 올해 영구정지한 친산 원전도 운전허가 연장을 신청했으나 탈원전 정책으로 철회됐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원자력발전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같은 시기인 1978년에 원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외국 기술로 지었다. 98%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섬 나라이기에 전력을 수입할 수도 없다. 국토가 작아 재생에너지가 쉽지 않고, 지진이 잦아 원전의 안전성도 중요하다. 1999년 대만 내륙에서 발생한 지진은 무려 2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을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대만 궈셍 발전소는 수도인 타이베이에서 직선거리로 22km가 떨어져 있다. 부산광역시와 고리 원전의 거리보다 짧다.
그렇다면 안전이나 기술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열악한 대만이 왜 탈원전 정책의 수정을 목표로 하는 국민투표까지 왔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만 역시 2025년까지 20%의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비중은 지난해 8%로 2016년(12%)에서 급격히 낮아졌다.
원자력의 빈자리는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화력발전이 대신했다. 화력발전 점유율은 2016년 82%에서 지난해 86%로 증가했다. LNG 발전의 증가가 눈에 띄는데, 지난해 발전용 LNG 수입은 2016년보다 9.9% 증가했다. 대만은 세계 5위 LNG 수입국인데, 지난해 8월 15일 LNG 발전소 정지로 대정전(블랙아웃) 사태가 일어났다. 룽멘 원전 건설 중단, 가동원전 장기보수 등으로 전력예비율이 낮아진 것이 원인이다. 670만 가정이 정전 피해를 봤으며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정부는 탈원전이 60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지는 에너지 전환이라고 말한다. 탈원전이 전력수급과 산업에 주는 영향이 급격하지 않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0년에 걸친 탈원전이라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2029년까지 폐쇄되는 원전은 10기다. 2026년부터 4년간은 매년 원전 2기(연평균 1.7GW)가 사라진다. 2023년 신고리6호기를 끝으로 신규로 건설되는 원전은 없다. 성장하지 않는 산업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 원전 산업에 몸담고 있는 기업들도 일감이 떨어지고 있어 출구를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잃어버린 산업 인프라를 다시 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원전 기술 선진국이었던 영국의 사례로 알 수 있다.
에너지정책의 효과는 장기적이다. 현 정부의 결정은 차기 정부 또는 그 후에 나타난다. 단기적인 정책도 국민 여론을 살펴야 하는데 60년에 걸친 장기적인 정책이라면 더더욱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국민투표가 어렵다면 공론조사라도 실시해야 한다. 고작 5년 계획의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놓고도 공론화를 추진했는데 60년 정책을 두고 공론조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만의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의 의의는 크다. 정부의 설명처럼 탈원전 정책이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국민의 의사를 묻고 방향성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 필자 약력: 정동욱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사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석사 -미국 MIT 원자력공학과 박사 -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장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처장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에너지환경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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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탈원전 청구서가 쌓여간다
문화일보 2018.11.02. 12:10
검증없이 시작한 탈원전 정책
환경과 경제성에서 모두 후퇴
전기료 대폭 인상도 뒤따를 것
원전은 60년 積功의 국가자산
5년 임기 정권이 무너뜨리면
두고두고 책임론 피할 수 없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정의와 선의를 앞세워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예기치 않은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9일 “탈핵시대로 가겠다”며 다소 급진적인 용어를 동원했지만, 요즘 문 정부는 ‘에너지 전환’이란 순화된 표현을 주로 쓴다. 탈원전의 ‘숨은 비용’과 태양광·풍력 등 대체에너지의 난맥상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탈원전 공약은 밀실에서 이뤄졌다. 정교한 영향 분석이나 전문가 그룹의 검증 없이 환경론자들 몇몇이 뚝딱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탈원전은 친환경인가. 문 정부 출범 후 1년간 온실가스 추정 배출량은 그 전 1년에 비해 7.9% 늘었다. 탄소 배출이 없는 원전 비중을 줄인 대신 화력발전을 늘린 탓이다. 그린피스 창설자 패트릭 무어도 “원자력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지 않는 유일 에너지”라고 했다. 문 정부가 탈원전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오히려 원전을 대신한다는 태양광·풍력은 산림·저수지 등 수려한 자연을 온통 헤집어놓고 있다. 태양광 패널은 20년 수명이 지나면 골치 아픈 폐기물이 된다. 탈원전을 외쳤던 환경·시민단체 출신은 태양광 열풍 뒤에서 국고 지원금을 나눠 가졌다. ‘좌파 비즈니스’로 불리는 요지경이다.
원전을 없애고 태양광을 키우려는 정부 논리는 수시로 바뀌고, 때론 눈속임도 동원한다. 월성1호기를 두고 애초엔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더니, 정작 폐쇄를 결정할 땐 ‘경제성’을 이유로 들었다. 180도 달라진 시각이다. 그나마 2015년 90%대였던 월성1호기의 가동률을 대폭 축소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꿰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수조 원씩 흑자를 내던 한국전력이 올 상반기 8000억 원 넘는 영업손실을 낸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탈원전과 무관하다고 했다. 원전 가동률 저하로 값싼 전력 구입 비중이 줄어든 외에 무슨 이유가 있는가. 태양광의 경제성을 부각하려고 설비투자 비용을 시장가격보다 낮춘 정황도 드러났다.
탈원전 이슈에서 전기요금은 특히 민감하다. 민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탈원전에도 2030년까지 전기요금은 10.9% 인상에 그칠 거라고 장담했다. 빤한 거짓말이다.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요금은 당연히 오른다. 독일도 2000년 이후 2배로 올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문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2017∼2030년 한전의 누적 전력 구입비는 146조 원 더 늘어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4대강 사업을 6번 할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소는 평균 발전단가가 올해 kwh당 101.31원에서 2030년 258.97원으로 폭등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탈원전이 합당하다면 국민 부담 내역을 정확히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마땅하다. 불리한 내용이라고 숨기면 명분은 퇴색하고, 또 언젠가 탈이 나게 돼 있다.
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가 일자리를 늘린다지만, 보조금이 끊기면 사라지는 임시직과 다를 바 없다. 태양광·풍력 설비 시장은 국내 업체가 해외 기업에 밀리고 있다. 내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양질의 일자리가 풍부한 원전 생태계는 주저앉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3만9000명인 국내 원전 인력이 2030년에 가면 3만 명 이내로 줄어든다. 국내 신규 원전 설계가 끝나는 내년 이후 핵심 인재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자력산업은 60년 적공(積功)으로 이룬 자랑할 만한 국가 자산이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중국의 차세대 원전사업에 투자할 만큼 성장성도 크다. 4차 산업혁명기에는 로봇, 무인차, 드론 등 전기 쓸 일이 훨씬 많아진다. 태양광 설비의 이용률은 15%, 풍력은 25% 안팎이다. 여의도의 13배에 달하는 새만금 땅에 4GW급 신재생 설비를 세운다 해도 실효 발전량은 0.7GW에 그친다. 월성1호기를 그대로 두면 당장 해결되는데, 바보 게임이 따로 없다. 원전은 고도의 과학기술과 복잡한 변수가 얽힌 사업이다. 자칫 틀어지면 막대한 손실을 부른다. 5년 임기와 함께 끝날 일이 아니고, 허물은 두고두고 남는다. 책임론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탈원전 1년이 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청구서가 속속 쌓여간다.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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