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05. 19:00
지난 4일, 당 정 청 회의가 열렸던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근거 없는 위기론’을 말했습니다.
‘일부에서 최근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라고 운을 뗀 뒤에 "우리 경제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들의 경제 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솝 우화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있습니다.
화려한 옷을 좋아하는 임금님에게 사기꾼 재단사 두 명이 찾아옵니다.
임금님을 완전히 벗겨 놓은 채, 너무 아름다운 옷을 입으셨다고 칭찬해줍니다.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위기론을 말하고 있는데, 이 위기론이 근거 없다고 말하는 장하성 실장은, 그런 태도는 전형적으로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다가가 입고 계신 옷이 너무 훌륭하다고 말하는 재단사요 신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다 안 좋습니다.
생산, 투자, 고용, 소비, 수출, 이게 다 내리막입니다.
삼각파도가 아니라 오봉산 파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반도체, 하나는 자동차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 기둥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그런데 벌거벗은 임금님은 이 빨간 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비명이 벌거벗은 임금님 귀, 그의 보이지도 않는 비단 옷을 칭찬하는 신하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상인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매출 빼고 모든 게 다 올랐습니다."
이런 비명이 벌거벗은 임금님 귀에는 안 들립니다.
신하들이 임금님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는데 신하들은 오늘도 보이지도 않는 임금님 비단 옷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론을 근거 없다고 팽개치면서,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 정책으로 연말 이전에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제라인을 세 가지가 없는, ‘3무(無)’ 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위기의식이 없다는 첫 번째요, 진보 인사, 운동권 인사만 챙기니 경제 인재가 없다는 게 둘째요, 능력이 없다는 게 셋째라고 합니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는 ‘정유라의 선견지명’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최순실 딸 정유라가 4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말이 있죠.
"능력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정유라는 이런 말도 올렸습니다.
"있는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최근 ‘고용 세습’ 같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네티즌들이 이 정유라가 했던 말에 무릎을 치고 있습니다.
정유라 욕 할 것 하나 없다, 정말 맞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지요.
고용 세습을 보면서 청년 네티즌들이 정유라 한 그 말, "네 부모를 원망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말이 벌거벗은 임금님, 문재인 대통령 귀에는 안 들리는 모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전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살자, 하고 말했지만, 규제 철폐, 노동 개혁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신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설비투자가 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로 닮았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 안에 있는 누구도 우리 경제가 벌거벗었다는 말을 임금님에게 해주고 있지 않은 겁니다.
*TV조선 ‘신통방통’ 진행자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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