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14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조슈(長州) 출신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의 대표자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유신(維新) 지사를 키워낸 사상가로 평가되지만, 주변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논란의 인물이다.
입장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사정은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일화가 하나 있다.
'미국 군함 밀항 기도 사건'이다.
1853년 에도에 머물던 쇼인은 페리 제독의 내항 소식을 듣고 기항지인 우라가(浦賀)로 달려간다. 서양 증기선 군함의
위용을 목도한 그는 엉뚱하게도 해외 밀항을 결심한다. 쇄국하의 일본에서 밀항은 중죄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듬해 1월 페리 함대가 재차 내일(來日)하자 그는 시모다(下田)까지 쫓아가 기어이 페리의 기함 포와탄(Powhatan)호에
오른다. 그는 세계를 보고 싶으니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였지만, 막부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페리의 거절로
밀항은 좌절되고 그는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밀항 기도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전년 8월 러시아 함대가 나가사키에
내항했을 때도 현지로 향했으나, 함대의 출항일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허탕을 친 전력도 있다.
쇼인은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출신들이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권을 잡음으로써 실제 이상으로 행적과 사상이
과대평가된 인물이다. 과격하고 국수(國粹)적인 그의 사상은 일본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그를 보는 시각이 고울 수가 없다.
다만 밀항 기도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신문물로 무장한 서양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양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의 발상이다.
일본의 '존왕양이'가 서양과 일본을 무조건 배척한 조선의 '위정척사'와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다.
역사는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등한시하는 자의 손을 들어줄 만큼 자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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