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위성락의 퍼스펙티브]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질적 비핵화 합의 나와야

바람아님 2018. 12. 17. 08:38


중앙일보 2018.12.17. 00:05

 

새해 북·미 정상회담 가능 비핵화 실질적 진전 담보할 큰 틀의 합의 반드시 나와야
싱가포르 회담 재현될 경우 북은 자기식 비핵화 고집하고 미는 수용 못 해 협상 파국

한은 북·미 회담 우선시해 남북 회담 부수적으로 대해  한국은 진중할 필요 있어



비핵화 협상 전망

연초부터 화려한 정상외교로 개막되었던 2018년이 저물어간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기점으로 시작된 북한과의 대화는 전례 없는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극한으로 치닫던 대결 국면은 사라지고 역사적인 협상 기회가 열렸다.


그러나 핵 문제를 중심으로 본다면 전반기의 급격한 기대와 후반기의 지루한 정체가 대비되는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변곡점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더 진전되지 못하였고, 정체 상태를 타개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기 때문이다.


왜 지금의 정체가 도래하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그간의 과정을 이끌어온 동력이 무엇이었고, 각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동력을 보자. 첫째는 톱다운 식 접근이었다. 처음부터 정상이 만나 협상의 방향과 에너지를 실무급에 내려주는 방식이 시도되었다. 통상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실무선에서 준비 교섭을 한 후 성과가 가시화되면 정상회담을 열어 이를 수확하는 바텀업 방식이 채택된다. 둘째는 한국의 촉진자 역할이다. 한국은 2018년 내내 남북 대화를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동력을 제공하려 하였다.


북·미의 동상이몽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러면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자. 톱다운 방식은 당초 북한이 제안하였고, 한국은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미국에서는 톱다운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호의적이었으나, 외교·안보 관리들은 신중하였다. 그래서 한때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급거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한국이 이를 활용하여 촉진자 역할을 함에 따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톱다운 방식과 한국의 촉진자 역할이 잘 작동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북·미가 후속 협상을 하는 단계에 이르자, 각국의 입장에 분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싱가포르 회담 직후 열린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간의 평양 회담이었다. 북한은 폼페오가 정상 합의에서 벗어난 요구를 하였다고 맹비난하고 이를 강도적이라고 불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북·미 간에 싱가포르 회담 결과를 보는 시각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양 정상이 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부터 하여 비핵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것이 두 정상이 아래에 내려준 협상 방향이라고 본다. 싱가포르 성명에는 그런 식으로 쓰여 있다. 그런데 북한은 폼페오와 대좌해 본 후, 그가 싱가포르 합의를 달리 해석하려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반면, 미국 내,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조야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한 사전 교섭 없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면한 결과, 북한 주장이 많이 담긴 성명에 합의해 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부터는 실무선에서 잘 준비하여 다음 단계로 나가려고 한다. 이들에게 급선무는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언급한 완전한 비핵화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즉, 이제부터는 바텀업 접근을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북·미는 비핵화의 개념(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냐), 비핵화와 신뢰 구축 간의 우선순위(신고가 먼저냐, 종전선언·제재완화가 먼저냐), 비핵화 추진 방식(단계적 동시적이냐, 핵·미사일 주요 부분부터 폐기냐)을 두고 계속 다투었다.


한국의 촉진자 역할 한계

다툼이 지속하는 가운데 실무협상의 성과를 확신하지 못한 미국은 폼페오의 방북을 재추진하다가 막판에 취소하였다. 자연히 한국에서는 남북 대화를 통해 새 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라는 인식이 생겼다. 남북 평양 정상회담이 열렸고, 우리의 촉진자 역할 덕분에 폼페오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북한은 합의되었던 김영철의 방미를 연기시켰고, 미국이 요망하는 비건-최선희 간 핵 대표 협상에도 불응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재차 톱다운으로 분위기를 정비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실무협상에서 진전이 없으면 2차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정체가 지속하자 국내에서는 김정은의 연내 방남을 성사시켜 북·미 협상을 추동하자는 구상이 제기되었다. 더 나아가 미국에도 일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선순환의 에너지를 투하할 것을 권유하자는 생각도 고개를 들었다. 다시 촉진자 역할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회의 계기에 트럼프를 만나,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은의 연내 방남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가 올 한 해의 경과이다. 정리하자면 톱다운에 관해서는 미국에서 이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된다는 것이고, 한국의 촉진자 역할에 관해서는 미국을 북한과 대좌시키는 효능은 있되 북한을 미국과의 대화로 견인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북한의 톱다운 vs 미국의 바텀업

그러면 새해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장래에 대한 전망은 북한이 어떻게 나올 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교착 상태가 북한의 실무협상 기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새해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올해 북한이 보여준 행보보다 더 유용한 참고자료는 없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올해 신년사로부터 시작한 회담 공세가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임할 것이니, 새해에도 유사한 구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 목표는 지금의 정체를 타개하고 북한 구미대로 협상을 복원하는 일일 것이다.


그간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치중하는 구상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미국 실무 라인을 우회하고 트럼프와 직거래하여 협상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첩경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싱가포르 성공 신화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북한은 주요 구상을 내놓기 전에 극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일정 기간 어깃장을 놓곤 하였다. 이 맥락에서 북한이 그간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불응하고, 김정은의 연내 방남에 응하지 않은 것은 그럴법한 일이다.


새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

아울러 새해에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최우선시하고 남북 정상회담은 부수적으로 대할 소지가 있다. 올해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한 후 북·미 정상회담을 하였으나, 새해에는 북·미 정상회담부터 하고 그 후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올 경우 관련국의 대응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 쪽에서는 북한의 주문 대로 놀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선호할 소지가 있다.


물론 그간 실무협상을 통한 준비부터 하자고 하였던 관리들은 소극적이겠으나, 어차피 지금은 실무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이니, 이들에게도 선택지는 별로 없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폼페오-김영철 회담과 비건-최선희 회담을 여는 가장 빠른 방안은 미국이 2차 정상회담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정상회담 준비라는 명목으로 실무협상에 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 관리 중에 그 방법으로라도 실무협상을 열어 정상회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차선이라는 쪽으로 선회하는 이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정체 국면을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유의점이 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하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의 집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고, 그때 한국을 상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요량을 할 개연성이 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진중할 필요가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도사린 위험

어쨌든 이처럼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상당하다. 그러면 남는 결론은 그 회담에서 비핵화의 실질 진전을 담보할 큰 틀의 합의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후속 협상은 안정될 것이다. 그러면 톱다운이든 바텀업이든, 남북 정상회담이 먼저이던 북·미 정상회담이 먼저이던 모두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러나 만에 하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의 재판이 된다면 이는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는 지나가 버린 역사적 기회였다. 그것이 재현되면 북한은 또다시 승리에 도취하여, 자기식 비핵화를 더 강고히 고집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후속 협상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더 이상의 톱다운에 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협상은 좌초할 것이다. 또 그때 가면 한국이 남북 협력을 추진할 공간도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이것은 피해야 할 길이다.


2018년 세밑에 비핵화 협상의 경과를 돌아보고 새해를 전망해보는 이유는 협상이 순항할지 파국으로 갈지가 새해에 판가름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협상 기회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이 기회가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소망과 우려가 뒤섞인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