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쏟은 게 서너 번쯤 된다. 1963년 11월 어느 날 '케네디 대통령 암살'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신문을 들고 퍽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겨우 열 살배기 어린 소년에게도 케네디라는 사람은 이미 엄청난 매력을 쏟아 부었던 모양이다.
2000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나는 다윈 이래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로 추앙받던 윌리엄 해밀턴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했다. 나는 일찍이 그가 미시간 대학에 재직할 당시 그의 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그가 옥스퍼드 대학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말에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언젠가 안식년을 받아 옥스퍼드에서 그와 함께 연구할 날을 벼르던 참이었다. 1982년 겨울 그의 미시간 집에서 보낸 꿈같은 일주일을 회상하며 나는 연구실 창에 기대어 한참 동안 눈물을 훔쳤다.
미국에 유학한 지 1년 남짓 되던 1980년 12월 8일 늦은 밤 기숙사 TV룸에서 나는 방을 꽉 메운 다른 기숙생들의 등 뒤로 발돋움을 한 채 존 레넌의 죽음을 맞았다. 고등학교 시절 무역선을 타던 삼촌이 미국에서 사다 준 1969년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를 나는 참으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비틀스 멤버 넷이 맨발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 그 유명한 앨범 말이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섬싱(Something)'과 '히어 컴스 더 선(Here Comes the Sun)'은 물론, '앤드 아이 러브 허(And I Love Her)'와 '엘리노어 릭비(Eleanor Rigby)'를 들으며 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비틀마니아(Beatlemania)가 되었다.
2002년 BBC 방송은 설문조사를 거쳐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윈스턴 처칠이 1위, 다윈이 4위, 셰익스피어가 5위를 한 이 목록에 레넌은 당당히 8위로 이름을 올렸다. 폴 매카트니가 19위, 그리고 조지 해리슨이 62위로 선정된 걸 보면 영국의 비틀스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사실 별 상관도 없는 이 한국인도 이렇게 잊지 못하는데 영국 사람들은 오죽하랴. 그가 떠난 지 30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의 '이매진(Imagine)'을 듣고 또 듣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그날을 상상하며.
(출처-조선일보 2010.12.0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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