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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1] 구제역과 토끼의 해

바람아님 2013. 12. 6. 15:18

(출처-조선일보 2010.12.2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전국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어느덧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로 번지고 있다. 구제역(口蹄疫)은 소·돼지·염소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우제류 포유동물에서 나타나는 전염성 질환으로 아주 작은 외가닥 RNA로 구성되어 있는 피코르나바이러스(picornavius)에 의해 발생한다.


며칠 후면 신묘년 토끼의 해가 밝는다. 토끼는 특별히 번식력이 강한 포유동물이다. 짝짓기 기간이 길게는 9개월간이나 이어지며 태어난 지 한 달이면 젖을 뗄 수 있기 때문에 암컷 한 마리가 1년에 최대 800마리의 자손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호주에는 원래 토끼가 없었다. 하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던 1859년 유럽으로부터 겨우 12마리를 들여와 풀어놓은 것이 불과 10년 만에 해마다 200만 마리를 사살하거나 포획해야 할 정도로 늘어났다. 견디다 못한 호주 정부는 결국 1950년 '믹소 바이러스(myxo virus)'를 풀어 토끼의 수를 줄이기로 했다. 초기 결과는 참혹하리만치 성공적이었다. 2년 만에 토끼의 수가 6억에서 1억으로 줄었다.

바이러스는 사실 단백질로 둘러싸인 핵산 조각에 불과하여 숙주세포의 DNA에 올라타야만 비로소 생명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숙주의 DNA는 자신을 복제할 때 무임승차한 바이러스의 유전물질과 단백질도 함께 만들어준다. 이렇게 수가 늘어난 바이러스는 어느 순간 자신을 키워준 숙주세포를 찢고 나와 순식간에 다른 많은 세포들 속으로 파고든다. 엄밀한 의미에서 생명체도 아닌 것이 염치도 없이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구제역은 흔히 입 주변과 발에 물집이 생기는 증상 때문에 영어로는 '발과 입 병(foot-and-mouth disease)'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족구병'쯤 되겠지만, 여름철 유치원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수족구병(手足口病)과는 엄연히 다른 질병이다. 대개 1주일 정도면 증상이 사라지는 수족구병과 달리 일단 구제역 양성으로 판명된 소나 돼지는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닭과 오리 신세와 마찬가지로 무지몽매한 '집단 살처분'을 면치 못한다. 명색이 첨단생명과학시대인데 한낱 바이러스한테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생명의 모습이 그저 가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