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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13] 사투리

바람아님 2014. 1. 5. 09:55

(출처-조선일보 2011.05.3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관객 800만을 동원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흥행에 한몫을 단단히 한 영화였다. 얼마 전 이익섭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사라져가는 강릉 사투리를 보존하기 위해 조촐한 학술회의를 열었다. 강릉 출신의 이익섭 교수님은 '국어학 개설''한국어 문법' 등 정통 언어학 저서들은 물론, 평생 사투리를 연구하여 '방언학'과 '영동영서(嶺東嶺西)의 언어분화'를 저술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언어학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에 혼자 열 시간이 넘도록 기차를 타고 산길을 걸어 강릉 고향집에 도착했더니 할머니가 깜짝 놀라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어머야라 야가 우떠 완?" 달이 없어 칠흑같이 깜깜한 밤중에 삼촌이 할머니에게 하던 말도 기억난다. "어머이 다황 좀 주게. 정나으 가게." 강릉말로 '다황'은 성냥이고 '정랑'은 뒷간을 일컫는다. 삼촌은 "어머니, 성냥 좀 주세요. 뒷간에 가게"라고 말한 것이다.

이익섭 교수님에 따르면 강릉에는 특이하게 여성들끼리만 쓰는 사투리가 있단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아이구 자내잔가. 우떠 여서 이러 만내는과(아이구 자네 아닌가.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가)." 내가 남자라 그런지 '~과'로 끝나는 문장은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강릉 사투리들 중에서 '마커(모두)''쫄로리(나란히)''데우(아주)''농구다(나누다)' '소꼴기(누룽지)' 등은 서울에 살면서도 어머니한테 늘 듣던 말들이다.

새들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둘 이상의 사투리를 배우지만 결국 정착하는 지역의 사투리로 자신의 말투를 다듬어간다. 언어의 첫째 기능이 의사소통이고 보면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이른바 표준어의 정립과 함께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지만, 사투리는 다양한 동물세계에서 나타나는 적응적 문화 현상이다. 언어가 사라지면 그와 더불어 문화도 사라지는 법이다. 강릉말에는 특히 말의 길이와 높낮이, 즉 음장(音長)과 성조(聲調)의 구분이 뚜렷이 남아 있는데, 이는 활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문화적 속성이라 더욱 아쉽다. "여러분 마커 방굽소야. 날이 데우 마이 따땃해졌잖소(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날씨가 아주 많이 따뜻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