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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35] 배호

바람아님 2014. 1. 30. 12:57

(출처-조선일보 2011.11.0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어제 11월 7일은 매혹적인 저음의 가수 배호가 29세의 젊은 나이에 홀연 우리 곁을 떠난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가 노래한 '파란 낙엽'처럼 서서히 고운 색으로 변하지 못하고 병마가 강제로 떨어뜨린 그의 삶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라는 노랫말을 끝으로 그는 '마지막 잎새'가 되어 떠났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최재천, 노 굿"이라는 혹평을 들은 이후 나는 절대 남 앞에서 노래를 하지 않는다. 그 흔한 노래방도 자의에 의해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이런 허물까지도 사랑해줄 수 있는 이들이 한사코 부르라면 나는 마지못해 배호의 노래를 부른다. '안녕',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 '오늘은 고백한다'는, 말하자면 내 수줍은 십팔번이다. 가수 생활의 대부분을 병마에 시달린 나머지 늘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노래를 하느라 가사를 짧게 끊어 부르던 그의 스타일이 호흡을 조절할 줄 모르는 내게는 안성맞춤이다.

문인이나 예인들은 죽어서 시나 소설 또는 그림·필름·음악을 남긴다. 이 중에서 음악이 가장 살갑다. 시와 소설도 물론 수시로 꺼내 읽을 수 있고 그림과 필름도 가끔 관람할 수 있지만 음악은 늘 틀어놓거나 항상 가지고 다니며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차 안에 60~70년대 팝송 CD 석 장과 배호 CD 한 장을 갖고 다닌다.

내 휴대전화 멋울림(color ring) 음악은 1973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나이 30을 가까스로 채우고 요절한 미국 가수 짐 크로치(Jim Croce)의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이다.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는 여전히 내 곁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만일 시간을 병 속에 넣어 간직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영원토록 매일 오로지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담고 싶소. 내가 만일 하루하루를 영원히 존재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나는 매일매일을 보물처럼 간직하며 또다시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소."

못다 핀 꽃이 아름답다. 오늘따라 제임스 딘의 영화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