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요즘, 사람들은 희망이 가득한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모색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결심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새로운 달력을 꺼내면서 좀 더 발전적이고 희망이 담긴 계획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큰 조직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연초마다 CEO나 국가 지도자들이 신년사를 통해 올해 추진할 여러 중점 이슈들을 명확히 밝혀서 구성원 또는 국민들과 비전을 공유하여 실행 가능성을 높인다. 이렇듯 새해의 시작에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작년 4/4분기 삼성의 어닝쇼크, 반도체 산업의 비관적인 전망 등으로 인해 희망과는 거리가 먼 소식들로 채워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반도체 수출의 향후 전망도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작년 반도체 수출 성장세를 살펴보면, 2018년 1월엔 전월 대비 53% 급성장하였으나 그 성장세가 분기마다 감소하면서 12월엔 급기야 전월보다 감소한 -8.3%를 기록하여 2016년 9월 이후 2년 3개월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 1월은 더욱 심각하여 -27.2%라는 기록적인 감소를 기록하였다. 작년부터 촉발된 반도체 위기론이 현실화되는 형국이다.
반도체 위기론은 우리나라의 수출에 있어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 위기와도 연결된다. 실제로 2018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2.5%로, 하나의 품목이 국가 전체 수출의 1/4을 차지한 셈이다. 반도체 이외에도 기계와 석유화학이 각 500억 달러를 초과하여 실적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설비·원자재 등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분야이기에 반도체에 비해 국내 생산 유발효과는 적었다. 결국, 작년 한해 호재처럼 보였던 6천억 달러의 수출 실적이 국내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이러한 우리나라 수출실적의 구조적 특성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수출 부문에서 반도체 의존도가 더 커지면서 수출 구조 취약성에 대한 우려는 점점 현실화되고, 이른바 '반도체 착시' 현상으로 다른 산업이나 국가 경제의 부진이 가려져 반도체 수출강국의 입지는 굳혔지만 국내 경제는 침체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매출이 상승하고 하강하는 사이클은 예전에도 있었다. 반도체 산업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치킨게임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해왔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살아남아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 및 수출구조가 반도체 산업에 너무 큰 비중으로 의존하고 있어, 이로 인해 반도체 실적의 저하가 국가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작금의 '반도체 위기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하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양자기술, 인공지능기술은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집적화, 모바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인공지능기술 역시 실생활에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칩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결국, 현재 반도체 기술들을 활용하여 미래 핵심 기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이며, 우리나라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막대한 자금력과 국가적 관심을 배경으로 무섭게 우리나라를 추격하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중무역 분쟁의 여파로 주춤한 상태다. 국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우리나라 정부는 민간과 공동으로 대규모 연구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될 전망이다. 서두에 말한 새해에 희망찬 계획들이 잘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처럼 우리의 국가적 역량을 총 결집하여 지금의 반도체 산업의 위기, 한국 경제의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간다면 '반도체 강국 코리아'의 두 번째 전성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과 내일/이기홍]주한미군 흔드는 한미동맹 혐오자들 (0) | 2019.01.26 |
---|---|
[시론] 평화의 대가로 한·미동맹과 안보를 흥정할 순 없다/[세계와우리] 이젠 한국이 직접 北 비핵화 견인해야 (0) | 2019.01.25 |
[류근일 칼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로 가는 혁명 (0) | 2019.01.22 |
'이 정부에서는 살맛난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0) | 2019.01.22 |
[태평로] 美·이스라엘 공직자들의 '직업 정신' (0) | 2019.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