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3] 유격대와 선거

바람아님 2019. 2. 8. 09:53

(조선일보 2019.02.08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칼럼 관련 일러스트'유격(遊擊)'이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다.

빨치산은 '항일유격대'로 알려져 있고, 고된 군사 훈련의 대명사인

'유격 훈련'도 있다. 본래 중국의 무관직 명칭이었던 유격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1863년 조슈(長州)번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가 신분제를 깨고 평민이

참가하는 기병대(奇兵隊)를 창설하자, 이에 고무되어 우후죽순처럼 조직된

의용대를 조슈번 제대(諸隊)라고 한다. 이 중 활약이 컸던 기지마 마타베

(來島又兵衛)의 부대가 유격대를 자칭하였고, 이후 막부군 및

신정부군도 유격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때의 유격대는 기존 정규군 편제에서 벗어나는 별동부대의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야구의 short-stop을 '유격수'라고 한다. 사실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말이다.

메이지기(期) 야구 도입에 앞장선 교육학자 주만 가나에(中馬庚)가 "전열(戰列)에서 벗어나 대기하다가,

상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세를 굳히는 유군(遊軍)"에 빗대어 유격수로 번역한 것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유격대의 현대적 의미는 '게릴라(guerrilla)'이다.

게릴라전은 비정규 무장 세력에 의한 사보타주, 매복, 습격 등의 교란 전술을 말한다.

게릴라는 보는 입장에 따라 해방 전사일 수도 있고, 체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게릴라는 국제법에 의한 보호를 주장하지 못한다.


선거전(戰)이라는 말이 있듯 선거는 전쟁에 곧잘 비유된다.

'드루킹 사건'은 정치 음지에서 활개 치는 선거 용병 게릴라가 사이버 공간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선거 교란 행위를

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유력 정치인이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어둠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지 못하고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유감이다.

불법 선거 유격대가 발붙일 곳 없는 깨끗한 선거를 위한 정치인들의 각성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