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1.27 16:42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⑥
지난 22일부터 ‘옐로하우스 비가(悲歌)’를 연재하는 동안 많은 댓글이 쏟아졌다. 이 중엔 돈과 관련한 얘기가 적지 않았다. ‘인천 성매매 여성들에게 2000만원씩 지원해 준다고?’ ‘성매매는 불법인데 처벌을 해야지 웬 지원금?’ 등의 내용이다.
네티즌이 언급하는 2000만원은 옐로하우스가 있는 인천 미추홀구가 추진하는 ‘성매매 피해자의 자활 지원’을 의미한다. 미추홀구는 지난해 9월 ‘성매매 피해자의 자활 지원 조례 시행규칙’을 공포하며 2019년부터 4년 동안 여성 한 명당 1년씩 연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전주·아산·광주시 역시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 측은 “성매매 여성들이 구청에서 나오는 자활지원금을 기다리며 안 나간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알려진 뒤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손모(30)씨는 “미추홀구가 부자 동네도 아닌데 성매매 여성들에게 저소득층 지원보다 더 큰 금액을 줄 필요가 있느냐”며 “인터넷에 그 돈을 받고 다시 성매매하자는 글이 올라온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정작 옐로하우스 여성들도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원 절차가 그들의 현실과 안 맞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성매매 여성이 탈성매매 각서와 자활 계획서를 내면 선정위원회가 심사해 지원 대상을 정한다. 지원금은 주거지원비 700만원과 생계비 월 100만원, 직업훈련비 월 30만원 등이다.
탈성매매가 조건이며 활동가와 교육 담당자가 상황을 점검해 다시 성매매하면 지원금을 환수당한다. 주거비는 일정 기간 뒤 갚아야 한다. 인천 미추홀구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이를 위한 예산이 9040만원 편성됐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이런 방식의 지원금을 받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여성 B씨(53)의 얘기다.
“지원금 제도는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1년에 4명만 지원 가능하다면 나머지 여성은 몇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기해야 합니까. 정말 이곳 여성을 생각한다면 실태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정부 사람 단 한 명도 만난 적 없고 이와 관련한 설문조차 한 적 없습니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신분 노출에 대한 불안이다. B씨는 “수십 년 동안 가족 모르게 이곳에 있었다”며 “우리끼리 본명을 숨길 만큼 신분 노출에 민감한데 개인정보를 등록하고 매달 구청에 가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여성들이 제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 조례를 대표 발의한 이안호 인천 미추홀구 의원은 “현재 예산으로 4명을 지원할 수 있지만 지원자가 많으면 추가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청 담당자와 위원회 인원을 최소로 하는 등 신분 노출을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성매매를 중단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여성들의 인식도 지원 제도를 꺼리게 한다. 지자체나 여성단체들이 이들을 지원할 때 대부분 탈성매매를 조건으로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부모 병원비 등 당장 시급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여성이 집창촌 이탈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증언이다. 여성 D씨(36)는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성매매를 했다가 다시 집창촌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월 60만원 정도의 지원금으로 금융권 빚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D씨는 오래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병원비로 큰 빚을 졌다.
“수입을 떠나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한두 달 정도는 좋았어요. 그런데 성매매 근절 캠페인에 참여해야 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광고 선전용으로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이 다 알려진다는 것이 가장 두렵거든요. 정말 우리 삶을 염려해주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잘 준비하면 이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면서 탈성매매를 돕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활동가 변정희씨는 “스웨덴의 ‘말뫼 프로젝트’는 업소에 있는 여성이 탈성매매로 갈 수 있게 생계비 등을 지원해줘 수백 명을 탈성매매 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변씨는 “탈성매매 여성이 성매매 근절 캠페인에 동원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지만 이 여성들의 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형사처벌할 수도 있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비난 댓글을 볼 때마다 또 다른 걱정을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부모와 형제에게도 철저히 숨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욕설 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 친지나 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괴로운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범죄자라고 몰아붙이는 욕설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B씨의 얘기다. “우리가 악인처럼 된 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매매를 처음 만든 것도 아니고 이 동네를 조성한 사람도 아니지 않나요. 우리가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인가요? 우리도 알고 보면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댓글 단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들을 범죄자라고 비난한다면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댓글을 달고 가족을 욕하는 사람들도 형사처벌 받을 수 있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기사가 나간 직후 악플에 상처받은 D씨가 보내온 문자는 이랬다.
“누구나 남이 알지 못하는 상처가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그 상처를 건드리면 ‘네가 뭘 알아’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환한 조명이 꺼진 뒤 진한 화장을 지우고 나면 남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범죄자라고 욕하는 당신, 악플 다는 당신도 범죄자 아닌가요?”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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