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2.02 06:00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⑦
설 연휴는 집창촌 여성들에게 대목이라고 한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기 힘든 남성들이 찾아온다. 손님 수가 평소의 두 배 정도 된다는 것이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여기에 모이는 셈이다. 성매매 종사 여성 B씨는 “이맘때가 되면 집창촌이 번창했던 옛 생각이 난다”며 “옛날엔 설에 방이 모자라 업주들이 근처 여관을 다 예약했었다”고 말했다.
특히 주변 공단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B씨의 말이다. “새해에는 서로 복 많이 받으라며 인사 하니까 시비 붙는 일이 거의 없어요. 주로 부모님이 없는 사람, 고향에 가고 싶어도 사정이 있어 못 가는 사람들 하소연 들어주는 게 이 무렵 저의 일이지요.”
대부분 여성은 설날 고향 집에 가지 못한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B씨는 “여기 있는 여성들도 남들 다 쉬는 설에 여유를 가져보고 싶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 D씨(36) 역시 올해 설 옐로하우스에 있을 계획이다. 아픈 어머니를 매년 찾아뵙고 설을 함께 보냈지만 몇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이곳을 지킨다. 또 다른 여성은 이곳에서 지낸 15년 동안 명절에 고향을 찾은 것은 딱 한 번이라고 했다.
이들은 주방 이모가 끓여준 떡국을 먹으며 명절 기분을 냈다. 그는 “명절은 나에게 마음 아픈 단어”라며 “TV에서 가족이 일출을 보러 가거나 모여 앉아 밥 먹는 장면이 나오면 너무 부러워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곳 분위기가 좀 다르다. ‘옐로하우스 비가’를 연재하는 동안에도 여성들은 집을 비우라는 압박을 계속 받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오후 옐로하우스를 찾았다. 설 연휴가 코앞이지만 정적만 감돌았다. 조합 측이 지난달 “설 이후 철거를 시작하겠다”고 통보한 탓에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B씨는 “이날 오전 철거업체 대표가 찾아와 특정 업소를 지목하며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철거하겠다고 했다”면서 “빈 곳부터 허물겠다고 했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명절을 앞두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걱정했다.
B씨가 말한 곳은 옐로하우스 ○호다. 이곳은 옆의 여관 건물과 보일러관·수도관 등이 연결돼 있다. 여관 건물은 주인이 떠나 이미 한 달 전 내부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호에는 현재 이모와 종사 여성 등 7명이 산다.
○호의 한 여성은 “철거업체가 옥상 구멍을 막아 놓은 알루미늄 새시를 가져가 비·눈이 샌다”며 “거기다 여관까지 철거하면 보일러·수도를 못 쓰게 되는 것 아니냐. 이 추운 날에 당장 어떻게 견딜지…”라면서 울먹였다. 이어 이 여성은 “한 달 전만 해도 철거업체가 이곳은 사람이 있으니 마지막에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하며 “그런데 갑자기 설이 지나면 바로 허물겠다고 윽박지르니 여자들끼리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상황 변화가 궁금해 옐로하우스 일대를 재개발하는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 측에 물었으나 철거 일정과 관련해 아무런 답변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청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10월 ○호와 옆 여관 건물에 대한 철거 신청이 접수됐다. 접수 3일만 지나면 언제든 철거할 수 있다.
B씨는 “구청에서는 (조합이)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는 말만 하고 여성단체도, 인권단체도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며 “우리를 염려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조합이 강제 철거를 시도할까 봐 겁먹고 있다. 지난달 이곳 주민이 철거업체 관계자에게 떠밀려 다친 사건도 있었다. 2016년 12월 서울 전농동 집창촌 ‘청량리588’에서는 강제 철거 과정에서 성매매 업소 종사자 등 일부 주민과 재개발추진위원회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허선우 미추홀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은 “돌발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철거 시 충돌이 벌어지면 인원을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B씨는 올해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올 계획이었지만 철거 걱정에 업소를 비울 수 없게 됐다. 그는 “설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내가 처음 집창촌에 발을 들인 30년 전과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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