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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86] 배고픔에 관하여

바람아님 2019. 2. 16. 08:18

(조선일보 2019.02.16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그림자조차 생길 것 같지 않게 여윈 아이를 보는 일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샤먼 앱트 러셀'배고픔에 관하여'는 고통스러운 책이다.

책에는 건강을 위한 단식이나 절식부터 종교적 금식, 거식증과 세계의 절반을 짓누르는 기근까지

배고픔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미국의 뉴멕시코주에는 '로드러너 먹거리 은행'이라는 단체가 활동한다.

뉴멕시코주(2005년 기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약 16%(7명 중 1명꼴)고,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어린이는 25%(4명 중 1명)다.

더 놀라운 사실은 푸드 뱅크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 중 절반은 직업이 있으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역시 '푸드 뱅크' 안에서 일어나는데,

런던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케이티가 직원 몰래 통조림을 퍼먹다가 들킨 후,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아이를 먹이기 위해 밥 먹듯 굶었던 한 엄마의 지독한 허기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에서 단기 단식이란, 월말에 식비와 집세와 난방비와 의료비 중에서 무엇을 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행위를 뜻한다.

학교에서 아침과 점심 급식을 실시하는 월요일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일요일을 뜻한다.

사흘간 우유도 없이 마른 시리얼만 먹는 것을 뜻한다."


삶은 온갖 종류의 허기로 이루어졌다.

몸의 허기, 마음, 욕망, 존재, 사랑의 허기. 우리는 쉽게 현대를 과잉의 시대라 부른다.

하지만 나를 '우리'로 확대하고, '우리'를 '지구'로 넓히면, 세계는 예상 밖의 풍경을 드러낸다.

동아시아나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선진국이라 해도 굶주리는 어른과 아이들이 있다는 뜻이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에서 내게 가장 무겁게 다가온 문장은 이것이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