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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90]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바람아님 2019. 3. 17. 18:24

(조선일보 2019.03.16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친구가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오래전 내가 문학상을 받고 등단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지만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슬픔에 비해 기쁨은 나누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슬픔이 '나는 고통을 피해 갔다'는 안도와 다행을 기반으로 한 감정인 데 비해,

기쁨은 조금 더 미묘한 심리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축하와 칭찬이 대부분 피상적이라면 우리가 누군가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은 그러므로 진심이다.


라디오 상담 프로를 진행하며 슬픔에 빠진 사람 사연을 많이 받았다. 그들에게 건네던 말이 있다.

'내가 만약 내 딸이라면' 하는 생각으로 날 대하라는 거였다.

재우고, 씻기고, 먹이며 아픈 딸을 돌보듯 나를 돌보란 뜻이었다.

하지만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다가

내 얘기가 슬픔에 빠진 이에겐 일면 소용없는 얘기일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슬퍼하는 사람이 참 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휴식이다. 휴식이 왜 어려운가.

저자들은 '슬픔이 원기를 고갈시키는 것처럼 좋은 감정 역시 에너지를 소진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이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므로 나는 좋은 감정으로 응대한다.

그러나 그 응대는 그 자체로 나의 감정적 자원을 크게 소모시키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 먹는다."


슬픔을 공감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픔에 대한 우리의 관성적 반응이 큰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어떻게 가 닿았을지 반성하게 된다.

무겁고 불편한 내 마음을 덜기 위해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말이다.

물론 슬픔에 대한 최악의 반응은 '너만 슬픈 게 아니고, 나도 아프다'고 단언하는 사람일 것이다.

정확한 위로란 이처럼 힘든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산문
저자: 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427 p.
814.7-ㅅ946스=2/ [정독]어문학족보실/  [강서]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