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2019.03.18. 17:41
진압에 나선 청군은 속절없이 깨졌다. 누전누패(屢戰屢敗). 중국 역사상 영민한 군주가 3대나 연이어 등장한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를 거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은 어쩌다 농민이 주축인 변란에 흔들렸을까. 만주족 지배에 대한 한족의 불만에 건륭제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재정 고갈, 황실 측근의 초대형 부패, 아편전쟁까지 일으켰던 영국 등 외세의 침략이 겹쳐 국력이 쇠잔해진 탓이다. 밀리던 청군은 증국번·좌종당·이홍장 등 한족 출신 관리들이 새롭게 구성한 군대의 분전 덕분에 가까스로 전세를 돌렸다. 태평천국의 내분과 허울뿐인 개혁도 그 수명을 앞당겼다. 처음에는 ‘중국의 기독교 국가’를 내심 반겼던 유럽 국가들도 청의 신식 군대를 조련하며 태평천국 진압을 도왔다.
요즘 중국에서는 봉건 타파의 정신을 높게 사 난(亂)이 아니라 ‘태평천국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1864년 홍수전의 사망과 난징 함락에 이르기까지 14년 동안의 내란은 중국 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추정되는 희생자가 적게 잡아도 2,000만명 이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내전으로 꼽힌다. 인류 전쟁사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에 드는 희생자를 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강력을 이뤘던 청에 태평천국의 난은 예고된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동아시아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을 보면서 크게 번질 수도 있었던 쇼군과 존왕양이파의 싸움을 종결짓고 근대화로 내달렸다. 조선은 그 반대다. 세도정치를 구가하던 권문세가들은 태평천국의 난을 정확하게 짚은 역관의 보고서를 무시하고 오히려 ‘청이 몰락하면 조선이 명실상부한 중화(中華)’라는 사대의 망상에 빠졌다. 외세를 자신과 동일시하던 조선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다른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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