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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한국 일기] 최고 명문대에 자녀 보내기… 영국에선 엘리트만의 리그

바람아님 2019. 3. 26. 07:03

(조선일보 2019.03.26 팀 알퍼 칼럼니스트)


영국 엘리트 계층 학벌주의… 한국 일부 학부모에 못지않아
옥스브리지 입학생의 55%… 역사 깊은 8개 사립학교 출신
최근엔 명문대 진학 도와주는 교육 컨설턴트들도 등장해


팀 알퍼 칼럼니스트팀 알퍼 칼럼니스트


얼마 전 종영된 한국의 교육 현실을 비판했던 한 드라마는 이제껏 보아왔던 그 어느 한국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이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나와 같은 영국 시청자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풍자적인 유머, 선하지 않은 주인공, 그리고 악마처럼 교활하게 짜인 시나리오,

이 모두가 영국 시청자를 끌어당길 만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영국에 수출하기는 힘들 듯하다. 한국인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한국에 오래 살아 한국 사회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보낸 첫 달의 어느 밤이었다.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닐 만큼

으스스한 1월 중순의 밤이었다. 눈은 두껍게 쌓여 있고 공기는 차가운 이런 겨울밤은 그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친 학원에서는 교복을 입은 수많은 고등학생이 눈 덮인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순간 나는 그들이 또다시 독서실로 이동하는 대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영국 사람에게 한국 사람들이 교육에 접근하는 방법은 완전히 이해 불가한 것이다.

내가 고3 나이였을 때 영국에서는 일주일에 고작 16시간 정도의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그 반의 수업을 받아서 대학 시절 나는 심지어 학기 중에도 레스토랑에서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영국 사람들이 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다거나 학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제로 정반대이다. 영국 사람들이야말로 학벌주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축구가 영국 대중의 국민 스포츠라면

자녀들을 최고 명문 학교에 보내는 것은 영국 엘리트 계층들만의 스포츠일 것이다.


[팀 알퍼의 한국 일기] 최고 명문대에 자녀 보내기… 영국에선 엘리트만의 리그
/일러스트=이철원


세계 최고의 대학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옥스브리지 (Oxbridge·Oxford 와 Cambridge를 합쳐서 줄인 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SKY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옥스브리지에

입학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교육 관련 자선단체인 서튼 트러스트가 2007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옥스브리지에 입학한

55%의 학생들의 출신 학교가 8개로 압축된다고 한다. 그중 6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만큼 역사가 깊은 사립학교들이다.


그중 하나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고 알려졌으며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세컨더리 스쿨

(11세부터 대학 전까지 다니는 중등학교) 이튼(Eton)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튼은 출생 이전이나 늦어도 출생 시점에서

등록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찍 등록하는 것만으로 입학이 가능하다면 영국 소년의 반 이상이 이튼을 다닐 것이다.

톱 레벨의 세컨더리 스쿨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인맥을 가지고 있느냐가 바로 핵심이다.


영어에는 '올드 스쿨 타이(old school tie)'라는 말이 있다.

중세 이후로 영국의 학계, 재계, 정계를 지배해 온 동문들 간의 학연으로 이루어진 인맥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6명의 영국 수상 중 4명이 모두 옥스퍼드 출신인 것을 보면 이런 결속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녀를 영국 최고 명문 세컨더리 스쿨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올드 스쿨 타이'로 맺어진 부모의 튼튼한

인맥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최근 베일에 쌓인 새로운 선수가 게임에 등판했다.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드라마에서 '코디'로 불렸던 교육 컨설턴트이다.

이들은 재력은 있지만 인맥이 부족한 영국 부모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사실 영국 시장은 이 코디들에게

피라미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판이 큰 아시아 시장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나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영국인 코디가 자신이 170명이 넘는 중국 학생들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입학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떠벌리는 것을 온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에이전시는 돈은 있지만 인맥이 없는

가족들로 가득한 아시아의 대도시로 영역을 확장한 듯 보인다.

그들이 활동하는 도시 리스트에는 두바이, 아부다비, 러시아의 여러 도시 그리고 서울이 올라와 있다.


'때로는 진실이 허구보다 더욱 비현실적이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이 남긴 말이다.

어쩌면 영국과 한국의 돈 많은 부모와 신비로운 코디들에 관한 진실은 그 드라마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에피소드보다도 더욱 흥미진진하고 더욱 거짓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