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30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최근 가장 많이 출간되고 있는 책은 대중 심리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심리학자나 전문의들의 책이 아닌
환자 본인의 기분 장애 얘기라든가, 무례함에 웃으며 대처하는 법 등 보통 사람을 통해 '듣는'
우울과 불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요즘 사람들은 콤플렉스나 트라우마 왜곡 같은 용어를 일상적으로 쓸 정도로 심리학과 친하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는 측면에선 좋은 일이지만 '심리화'라고 부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가령 어릴 때 부모님한테서나 학교에서 폭력에 관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이 현재 풀리지 않는 연애나 취업 문제를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때가 많은 식이다.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결정 장애나 강박 증후군, ADHD 같은 장애로 설명하는 것도 득보다 실이 많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에는 불편으로 여기던 것을 고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지현의 책 '고민이 고민입니다'에서는 이런 현상을 '고통의 역치가 낮아졌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책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현대사회의 편안함이 주는 부작용 때문이다.
'샛별 배송'은 기다리지 않고 신선 식품을 아침에 바로 배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드라마 13부작을 기다리지 않고 한 번에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성공은 인내심의 역치가 나날이 낮아지는 현대인의
특징을 가속한다. 가령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거나 새 인간관계에 직면하면 서너 달은 힘들다.
그것을 고통이 아닌 낯선 것에 적응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면 잃을 것보다 얻는 게 많다.
혼자 있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데 안정적이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
연애도 질투와 슬픔·외로움을 제거하면 완벽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맑은 날만 지속되면 결국 사막이 된다는 격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고민이 고민입니다 : 일상의 고민을 절반으로 줄이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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