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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91] 리틀 포레스트

바람아님 2019. 3. 23. 11:10

(조선일보 2019.03.23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함께 공부했던 남자 친구가 임용고시에 붙고, 자신은 떨어진 날. 혜원에게 가보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고향 미성리였다.

혜원이 텅 빈 고향 집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했던 건 눈밭에 묻힌 꽁꽁 언 봄동을 캐 된장국을 끓이고,

쌀통의 쌀을 긁어 밥을 짓는 것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오래 노력했던 것에 실패하고 눈앞이 캄캄해진 날,

누구나 던져봤을 질문에 관한 답이다.

"앞으로 나, 어떻게 살지?"

시골이 싫다고 서울로 떠날 때는 언제고 왜 다시 온 거냐고 묻는 고향 친구에게 혜원은 배가 고파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리틀 포레스트'가 주는 정확한 위안은 4계절을 배경으로 제철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음식 그 자체다.

덕분에 편의점 김밥과 도시락, 컵라면이 사라진 풍경 뒤로 감나무가 등장하고,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바람에 말라가는 감,

겨울을 뚫고 나온 봄나물, 천천히 삭는 식혜가 등장한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동네 마트에서 사는 곶감이나 식혜가 이리 복잡한 과정과 긴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실감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음의 변화도 저리 더디 오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는 생각은 덤이다.


친구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강원도의 할머니 집으로 잠적하듯 떠난 사람의 얘길 들었다.

울음으로, 침묵으로 보내던 며칠, 배가 고파 밥을 지어 먹다가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어느 날은 머릿속 시끄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몸이 하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위장이 꼬르륵거린다, 밥 짓는 냄새가 좋다, 밥알이 달다, 같은 말들. 우리의 코가, 눈이, 위장이 속삭이는 이야기 말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눌은밥을 먹던 어느 날, 고향이 꼭 장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란 걸 알았다.

허기가 육체적 배고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듯 말이다.

씹을수록 단 쌀알 하나에, 냉이 된장국 안에도 봄의 고향은 있다.

영화에서처럼 숲이 아니라도 괜찮다.

약해진 우리에겐 당장 떠날 수 있는 고향, 마음의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리틀 포레스트" 원작 및 영화 정보 :



<원작 소설>

여자, 귀촌을 했습니다 : 하루하루 새로운 나의 리틀 포레스트
이사 토모미 지음/ 류순미 옮김/ 열매하나/ 2018/  226 p
520.4-ㅇ746ㅇ/ [정독]인사자실/  [강서]3층




<한국판 영화>

리틀 포레스트 = Little forest
임순례 감독/ 인조인간/ 2019/ DVD 1매(103분):
DVD688.21-31845/ [정독]디지털자료실



<일본판 영화>


(슬로우 푸드 라이프) 리틀 포레스트. 1, : 여름과 가을

모리 준이치 감독/ 아트서비스/ 2015/ DVD 1매(112분)
DVD688.21-26494/ [정독]디지털자료실(2동3층) 
DV688.2-14649/ [강서]디지털실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 당신이 꿈꾸던 킨포크 라이프
모리 준이치/ 아트서비스/ 2015/ DVD  1매(120분)
DVD688.21-27129/ [정독]디지털자료실(2동3층)
DV688.2-13944/ [강서]디지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