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9.03.27. 04:42
난리다. 완전 난리 블루스다. 유튜브에 가 봐라. 일찍이 이리도 다양한 버전의 동영상을 본 적이 없다. 검색창에 ‘아모르 파티’를 치고 스크롤바를 아무리 내려도 끝이 안 보인다. 조회 순서로 클릭해 봤다. 가장 많은 건 KBS ‘열린음악회’ 영상 930만 뷰. 다른 영상들도 보통 하나에 100만~500만명이 봤다.
사실 나는 이 노래의 인기를 잘 몰랐다. 친구가 보내 준 결혼식 축가 동영상을 보고 완전히 뒤로 넘어져 다른 것도 찾아보다가 한나절을 빼앗겼다. 이 노래는 이미 결혼식장의 대세였다. 가사와 리듬 때문일 게다. 친구(들)가, 또는 끼 좀 있는 친정 엄마, 장모님, 가족 구성원이 결혼식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우아한 한복 차림으로 열창하던 장모님이 그만 계단에 걸려 넘어지고, 수줍게 손사래 치던 양가 부모가 무대를 뒤집어 놓고, 턱시도 신랑과 웨딩드레스 신부도 “그래 우리 결혼은 운명이었어”라는 듯 춤판에 뛰어든다. 물론 가사는 살짝 바뀐다. “연애는 필수, 결혼도 필수”로.
이 노래의 진정한 대중성은 장소ㆍ행사ㆍ나이ㆍ성별 불문이라는 거다. 노래 교실과 댄스 학원, 색소폰 교습소를 장악한 지는 오래다. 대학 축제, 지자체 축제, 전국노래자랑, 신입사원 환영회, 팔순 잔치, 클래식 합창단, 아이돌 무대, 버스킹, 심지어 그라운드에서도….
올해 환갑을 맞은 가수 김연자가 6년 전에 발표한 이 곡은 2년여 전부터 역주행했다. 스타 작곡가 윤일상이 만들고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이건우가 작사했지만 뜨지 못했다. 그러다 이 노래에 중독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홍보하면서 급기야 작년 말 KBS 연말가요대축제 대미를 이 트로트가 장식했고, 그 위대한 방탄소년단들께서 흥에 겨워 백댄서처럼 춤을 추셨다. 인터넷에 떠 있는 최고의 헌사는 “내 인생은 아모르 파티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래서 ‘갓연자’고 ‘갓모르 파티’다.
16비트의 빠른 EDM(전자댄스음악) 반주에, 화려한 꽃망토 자락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마이크를 아래로 길게 내리는(맷돌 창법)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니들이 인생을 알긴 알아?”라는 듯 시원하게 불러 젖히는 김연자. 떼창과 댄스로 환호하는 사람들.
“그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모든 걸 잘 할 순 없어… 사랑도 화살처럼 지나가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슬픔이여 안녕…”
이제는 라틴어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파티(party)가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자는 뜻임을 다 안다. 니체의 고매한 철학을 이 가사만큼 쉽게 풀어준 게 또 있을까 싶다.
이 노래의 질주에 발동을 걸었다는 작년 부산대 봄축제 동영상을 본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대학 축제에 초청받은 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 일사불란한 떼창과 하늘을 찌르는 환호. 청춘은 왜 이리도 이 노래에 열광할까. 미래만 바라보며 사막에서 ‘난닝구’ ‘빤쓰’ 빨아대던 우리 세대는 모른다. 이 시대 청춘의 가치관은 ‘오늘’이다.
그런데 그 열광이 가슴에 짠한 연민을 주는 건 왜일까. 사실은 이 시대 청춘의 눈물겹고 엄숙한 떼창이 아닐까. 절망과 분노의 현실에 대한 집단 데몬스트레이션, 위안과 희망이 부재한 ‘이생망’을 향한 집단 샤우팅. 그래도 카타르시스가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청춘이 아닌 나는 가슴이 뛰는 대로 살기엔 늦은 것일까? 내게 결혼은 선택이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나이는 숫자고 마음이 진짜? 자칫하면 로망이 아니라 노망 소리 듣는 세상인데. 그래도 나는 오늘도 신나게 따라 불러 본다.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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