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30 팀 알퍼 칼럼니스트)
아기 상어 영어 버전 'Baby Shark' 전 세계에서 27억 뷰 달성
1997년 BBC 제작 '텔레토비' 英 역사상 최대 수출 프로그램
작고 시시한 그들이 보여준 건 언제나 변함없는 순수한 '긍정'
팀 알퍼 칼럼니스트
핑크퐁의 상어 가족이 이제 지겹지 않은가? 최근 아기 상어는 77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우리에게는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아기 상어는 아직 전 세계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아기 상어의 영어 버전인 'Baby Shark' 또한 최근 27억 뷰를 달성했다.
이렇게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비디오는 오직 13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혀 예상 밖의 이상한 콘텐츠들이 유행처럼 퍼지는 인터넷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기 상어의 지속되는 인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처음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베이비 샤크는 여전히 전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내 모국인 영국에서도 아기 상어는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리버풀과 같은
유명 축구 클럽의 선수들도 얼마 전 골 세리머니로 상어 가족 댄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달 영국의 한 국회의원은 예산 문제로 금요일 수업을 단축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맞서 수천 명의 학생과 함께
아기 상어 노래를 부르며 재무장관의 집무실을 향해 행진하며 시위를 하겠노라고 응수했다.
아마도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져 아기 상어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유행하기 전
영국 BBC에서 제작한 '텔레토비'뿐일 것이다. 1997년에 처음 전파를 탄 후 꾸준한 사랑을 받다 2015년에
다시 제작되기도 한 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어떻게 텔레토비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텔레토비는 배에는 텔레비전이, 머리에는 안테나가 달려 있는 원색의 털로 뒤덮인 생명체이다.
어찌 보면 구식 브라운관 TV를 털 달린 아기로 의인화한 듯도 하다.
그들은 거대한 토끼들이 뛰어노는 드넓은 녹색 언덕에서 횡설수설해대며 살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토끼들은 발정이 난 실제 토끼였다.
그래서 텔레토비 제작진들은 토끼들의 교미를 막느라 수시로 촬영을 중단해야 했다. 그 외에도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주먹만 한 눈이 달린 진공청소기나 땅 위로 솟아오른 샤워 헤드 등 매우 이상한 것들이었다.
텔레토비는 아동과 성인 프로그램을 통틀어 이제껏 영국에서 가장 많이 수출된 프로그램이다.
1997년 발표된 'Teletubbies Say Eh-oh'라는 노래는 유럽 전역의 음악 차트에서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촬영되었던 워릭셔주(州)의 농장은 팬들의 성지순례 장소가 되었다.
텔레토비가 뛰어놀던 녹색 언덕을 카메라에 담고자 몰래 농장으로 들어와 가축들에게 피해를 주고 농작물을 짓밟기
일쑤인 극성팬들 때문에 농장 주인은 결국 농장을 물에 잠기게 해 커다란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동 콘텐츠가 아이들 사이에 유행되었을 때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기 상어나 텔레토비와 같이 어른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끼친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지적으로 분석해보려고 노력한다.
답변을 구하고자 서양의 수많은 저널리스트가 신경과학자, 음악교수, 소아과 전문의, 발달심리 전문가들을 만났고,
그 전문가들은 무엇 때문에 텔레토비가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장황한 견해와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선가 아기 상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인텔리들은 아기 상어와 텔레토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친 듯하다.
요즘 영국 네티즌들이 온라인에서 브렉시트나 경제학과 같은 어려운 주제에 관하여 설전을 벌일 때
누군가는 'Baby Shark doo-doo-doo(아기 상어 뚜루루뚜루)'와 같은 댓글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갑론을박 토론의 열기를
식힌다. 1990년대 후반 텔레토비 또한 똑같은 역할을 했다.
대화가 지나치게 심각해져 가면 누군가 텔레토비의 대사를 불쑥 내뱉는다.
"The sun is setting in the sky. Teletubbies say goodbye!(해님도 집에 돌아갈 시간이에요, 텔레토비 친구들 안녕!)"
그러면 진중했던 토론은 어김없이 킥킥대는 소리로 바뀌었다.
텔레토비와 아기 상어는 디즈니·드림웍스 콘텐츠에 비하면 시시하고 하찮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긍정이다.
치열한 현대사회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때로는 가볍고 긍정적인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텔레토비와 아기 상어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의 부정적인 구석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장 순수한 미소로
그곳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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