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06.04. 14:11
내부 철거 이뤄진 집창촌 건물들..나뒹구는 옛 물건
시행사 도원개발 "종사자들에 400만원씩 자활지원금"
아직 이주 거부하는 이들도.."제대로 보상 못 받았어"
‘100년 유곽’ 자갈마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자갈마당 부지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도원개발은 이날 자갈마당 내 ‘60호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도원개발은 지난달 31일 대구시로부터 ‘도원동 주상복합 신축공사’ 사업계획 승인을 얻었다. 지난 1월 10일 신청을 접수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도원개발 측은 대구시에 자갈마당을 포함한 주변 1만9080여㎡에 사업승인을 신청했다. 5개 동으로 된 아파트 886가구(오피스텔 256호 별도)를 짓기 위해서다. 지하 6층 지상 49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다. 대구시는 이 사업에 대해 지난 2~3월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조건부 건축심의 의결을 했다. 이번에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굴삭기가 철거 작업을 하는 양옆으론 이미 내부를 비운 집창촌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일부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일부는 현관에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버려진 옷걸이와 화장품, 가방, 신발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형광등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찢어진 벽지가 바닥을 향해 드리워져 폐허처럼 보였다. 오랜 기간 방치돼 곰팡내가 가득했다.
자갈마당은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이후 점점 위축됐다. 대구시와 경찰이 폐쇄회로TV(CCTV)를 자갈마당 출입로 4곳에 달고 가로등 270여 개를 달아 불을 환히 밝혔다. 성매수자들의 발길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00년 넘게 이어온 자갈마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갈마당을 폐쇄하기 위해 지자체가 10년 이상 노력했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부 업소가 영업을 계속할 정도였다. 그러다 이번에 도원개발이 재개발에 뛰어들면서 “이번엔 정말 자갈마당이 폐쇄될 것 같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음에도 여전히 이주하지 않은 이들도 갈등의 씨앗이 될 조짐이다. 이들은 도원개발 측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업주 박모(78·여)씨는 “자갈마당에서 40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말을 잘 듣는 사람들만 보상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한편, 홍성철 작가의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자갈마당의 시작은 1908년 일제강점기 직전 일본인들이 만든 야에가키초(八重垣町) 유곽이다. 조선 후기 대구가 서문시장을 필두로 거대 상권을 이루면서 유곽이 생겼다. 자갈마당은 해방 전까지 성업하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떠나고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47년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실상 당국의 묵인 속에 자갈마당의 운영은 계속됐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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