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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전 영국판 '사랑과 전쟁' 실감나네-히로시 스기모토 사진전

바람아님 2013. 12. 22. 12:33
'이혼, 참수형, 사망, 이혼, 참수형, 생존.' 영국 학생들은 헨리 8세(1491~1547)의 여섯 부인들을 이런 공식으로 외운다.

이혼을 위해 로마 가톨릭과의 결별도 불사한 절대 군주 헨리 8세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다. 역대 왕 중에 최고의 카리스마를 뽐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여성 편력에는 사랑과 배신, 불륜과 죽음, 정치적 음모와 갈등, 종교와 외교분쟁이라는 흥미진진한 서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 부인 중에 가장 유명한 일화는 세기의 스캔들인 두 번째 부인 앤 불린을 둘러싼 것이지만, 네 번째 부인 클레비스 앤과의 이야기도 귀가 솔깃하다.

헨리 8세는 독일과의 동맹을 위해 독일 공주를 맞이하려고 하지만 막상 미래 신붓감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궁정 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을 급파해 초상화를 그려오라고 시킨다. 왕은 초상화를 보고 흡족해했다. 그런데 실물을 본 그는 크게 좌절한다. 그러고는 "말대가리같이 생겼다"는 험담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결혼은 6개월 만에 파탄이 나고 공주가 데리고 왔던 하녀인 캐서린 하워드가 왕의 다섯 번째 부인이 된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바로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부인 사진이 벽에 죽 걸려 있다. 일본이 낳은 사진계의 거장 스기모토 히로시(65)의 작품이다.

↑ 헨리 8세, 젤라틴 실버프린트, 1999, ⓒ스기모토 히로시

헨리 8세는 세기의 사나이답게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그런데 "말대가리같이 생겼다"는 네 번째 부인의 얼굴이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보다 미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선 초상 화가 홀바인이 실물보다 예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회화를 찍은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입체 형상의 흔적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16세기에는 사진이 발명되지 않아 헨리 8세나 부인들이 피사체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홀바인의 회화를 촬영했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알고 보니 이 사진은 밀랍 인형들을 촬영한 것이다.

밀랍 인형은 영국 런던 관광지인 마담 투소 박물관에 있다. 19세기 마담 투소는 홀바인의 회화를 보고 복제 전문가를 동원해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부인을 살아 숨쉬는 밀랍 인형으로 재현했다.

이제서야 사진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는 것 같다. 즉 홀바인의 회화를 복제한 밀랍 인형을 스기모토가 다시 재현한 것이다. 결국 클레비스 앤이라는 실물→회화→회화를 기반으로 한 조각 복제→사진이라는 몇 단계의 재현을 거친 셈이다.

스기모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과연 진실인가.


선사시대 동굴 벽화 이후 인간은 변하지 않는 자신의 정지된 모습을 회화나 사진으로 담고 싶어했다. 유한한 인간은 그 재현된 순간을 통해 영원을 꿈꾼다.

그러나 그 재현은 진실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스기모토의 메시지다. 리움 회고전을 위해 최근 방한한 그는 "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신선하고 색다른 이미지를 찍는 이미지 헌터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전시를 기획한 곽준영 리움 큐레이터는 "'결정적 순간'을 강조한 카르티에 브레송도 있지만 스기모토는 대상이 한때 거기 있었음을 증거하는 사진의 특성과 거리를 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결한 형식 △장인정신 △개념ㆍ철학적 깊이로 무장된 현대 미술가인 것이다. 그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여전히 19세기 대형 흑백 카메라를 들고 전통적인 인화 방식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 화단에서 스기모토의 부상은 1975년 극장과 디오라마 시리즈와 관련이 있다.

↑ 스기모토 히로시

스기모토는 한 장의 사진에 어떻게 하면 한 편의 영화를 담을 수 있을까 고심한다. 그래서 영화 상영 내내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와 셔터를 열어둔다. 그 결과 빠르게 돌아가던 영화의 움직임은 사라지고 백색의 빈 공간만 남는다. 순간의 미학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을 담아낸 것이다. 시간이 빛이라는 물질로 환원되자 드디어 감춰져 있던 극장 구조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오는 반전이 시작된다. 디오라마 시리즈 역시 눈속임을 동반한다. 디오라마는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것인데 과학자들이 배경화면에 3차원 입체 조형과 박제된 동물들을 붙여놓은 도상을 말한다. 예술가가 보기에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스기모토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알래스카 늑대 모형을 배경 화면에 배치해 놓은 디오라마에 렌즈를 들이댄다.

흑백인 이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인가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역시 일반 야생 사진과 다르다. 보통 야생 사진은 동물과 거리를 두고 카메라 줌을 당기는 방식으로 촬영한다. 줌을 당기면 대상은 포커스 인이 되고 배경은 포커스 아웃이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모서리 끝에서 끝까지 모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여섯 마리 늑대가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는 점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실제 풍경이 아닌 디오라마로 재현된 풍경이기에 가능하다.

리움에서 선보이는 작품 시리즈 7개 가운데 가장 최근작은 2006년에 제작된 '번개 치는 들판'이다. 작가는 마치 연금술사처럼 자신의 실험실에서 40만V가 흐르는 전기봉을 금속판에 맞대 인공적인 번개를 만들어낸다. 그의 대표작 바다 연작은 전시장에 새롭게 설치된, 초승달 모양의 암실에서 볼 수 있다.

미술관 입구 벽에 적힌 작가 노트 한 구절이 마음을 잡아끈다. "예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처음, 사람이 되었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전시는 내년 3월 23일까지.

■ '헨리8세와…' 7억8천만원에 팔려…작가 최고가는 '바다 3부작' 20억

"후원해 준 기업에 고마워서 작품을 선물했더니 그게 이번 경매에 나왔더군요. 50만달러 넘게 팔렸어요. 다시는 선물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웃음) 지난 5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강연장. 강단에 나선 스기모토 히로시는 최근 일화를 소개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헨리 8세를 포함한 초상화 사진 27점이 지난달 16일 파리 크리스티 현대미술 사진 경매에 나왔다. 선물용으로 제작한 작은 에디션이었지만 높은 가격에 팔렸다.

큰 에디션인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부인 7점은 2005년 소더비 뉴욕에서 74만4000달러에 팔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된 것은 바다 연작. 바다 3부작은 2007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88만8000달러에 팔리며 작가 최고 가격을 갈아치웠다. 스기모토 신작 가격은 40만달러대. 그가 지난해 2인전을 했던 마크 로스코의 100분의 1 가격이지만 그의 '활약' 덕에 사진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

 

                                          <히로시 스기모토 전시안내>

 

전시개요 음성설명 듣기음성설명 정지

일본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현대사진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히로시 스기모토(1948~)는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장인적 사진기술, 형식적 간결함, 개념적 • 철학적 깊이로 무장한 심도 있는 연작들을 발표해왔다. 삼성미술관 Leeum의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스기모토의 개인전으로,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대표적 사진연작들과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확장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디오라마 (Dioramas)〉, 〈극장 (Theaters)〉, 〈바다풍경 (Seascapes)〉, <초상 (Portraits)>, 〈개념적 형태 (Conceptual Forms)〉 <번개 치는 들판 (Lightning Fields)〉 등 주요 흑백사진 연작들을 전시하는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각 연작에 담긴 복잡다단한 시간의 층위를 추적하고, 미술 • 역사 • 과학 • 종교 •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작가의 폭넓은 관심과 사유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블랙박스에서는 사진 • 설치 • 영상으로 구성된 <가속하는 불상 (Accelerated Buddha)> 연작을 통해 소멸을 향해 가속해가는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의식의 기원을 찾아 정신적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을 시각화한다.

시각 이미지가 범람하고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디지털 조작사진이 현대사진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 스기모토는 스스로를 시대착오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역사와 의식의 기원을 탐구하고 정신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스기모토의 사유하는 사진은 현대사회의 현기증 나는 속도전에 지친 우리에게 근원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1차 강연회
* 일시 : 2013년 12월 5일(목) 10:00 - 12:30
* 장소 : 리움 강당
* 강사 : Artist Lecture : 히로시 스기모토/ Curator's Talk : 곽준영 리움 책임연구원

2차 강연회
* 일시 : 2013년 12월 19일(목) 14:00 - 17:00
* 장소 : 리움 강당
* 강사 : 신수진 : 사진 심리학자)/ 가타오카 마미 : 모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2차 강연회 모두 일반인 200명 대상이며, 리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가능(선착순 마감)
  • 교육공간 리움 씨어터(Leeum Theater)
    * 기간 : 2013년 12월 5일(목) - 12월 29일(일)/ 2014년 1월 28일(화) - 3월 23일(일) (리움키즈 기간 제외)
    * 장소 : 전시장내 Kids & Family 워크숍룸
    *내용 : 장노출 미디어 체험공간과 카메라의 역사 연표 패널, 전시의 주요 개념이 담긴 정보 검색대가 설치된 교육공간으로 기획전시 관람객 누구나 참여 가능
  • 전시안내

    관람 안내
    관람시간
    • 오전 10:30 – 오후 6:00 (매표마감 오후 5:0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연휴, 추석 연휴 휴관

    관람요금
    • 상설전: 일반 10,000원, 청소년 6,000원
    • 기획전: 일반 7,000원, 청소년 4,000원
    • Day Pass: 일반 13,000원, 청소년 8,000원 (Day Pass를 구입하시면 상설전과 기획전을 모두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설명
    • 상설전 : 평일 오전 10:30, 오후 1:30(한국어)/ 주말 오후 3:00(영어)
    • 기획전(Hiroshi Sugimoto) : 평일 오전 11:00, 오후 1:00, 3:00(한국어)/ 주말 오후 2:00(영어)
    • 디지털가이드를 이용하여 작품해설과 함께 감상이 가능합니다.(2,000원, 중학생 이상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