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38] 재스민 혁명

바람아님 2013. 12. 24. 09:00

(출처-조선일보 2011.11.2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2010년 튀니지에서 26살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시위로 이어졌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국민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함으로써 24년 동안 이어진 독재정권이 붕괴되었다. 튀니지의 국화인 재스민 꽃을 따라 이 사건을 재스민 혁명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재스민 혁명의 폭풍은 이웃 중동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에 이어 엊그제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권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978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래 33년 동안 철권통치를 하여 세계 최장수 독재자로 군림했던 살레 대통령 역시 성난 민심 앞에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중동의 정치적 변화는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고 사회의 모순이 일거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의 권익 증진은 요원하기만 하다. 중동 지역에서는 아직 명예 살인이 흔히 일어난다. 터키의 한 16세 소녀는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이유로 부모와 할아버지에 의해 2m 깊이의 구덩이에 생매장당했다.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난 7월 여성운동가 세이마 자스타니아가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돼 제다 시 법원에서 태형 10대를 선고받았다. 세계 각지에서 항의가 빗발치자 압둘라 국왕이 하루 만에 형 집행을 철회해야 했다. 예멘에서는 남편의 허락 없이는 여성이 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또 남편이 '난 너와 이혼한다'고 세 번 말하면 이혼이 성립된다.

혁명은 한편으로 진보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보수적일 수 있다.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과 함께 형제애(fraternite, 흔히 '박애'라고 번역하지만 원래 의미는 '형제애'이다)를 구호로 삼았다. '형제'들이 봉기해 '아버지'의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지만, 그 결과는 형제들만의 자유, 형제들만의 평등에만 그치고 '자매'들은 해방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가부장제가 형제들의 가부장제로 바뀌었을 뿐, 자매들의 해방은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중동 역시 비슷한 경로를 거치지 않을까? 남성 중심적 억압 체제가 앞으로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을 경험한 사회는 강력한 변화의 동력을 유지한다. 마법사의 제자가 불러낸 마법처럼 변화의 힘은 한번 가동되면 되돌리기 힘든 법이다. 재스민 혁명은 독재자의 실각에만 그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