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02 강경희 논설위원)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이 1806년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 영국 상선이 유럽에 발도 못 들이게 하라는 칙령이었다.
정치 갈등의 수단으로 경제 보복이 동원되는 건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하지만 꼭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나폴레옹은 경제 보복 카드를 마구 휘두르다 되레 자신의 몰락을 앞당겼다.
▶당시 유럽은 영국에 곡물을 수출하고, 영국산 값싼 공산품이나 설탕, 커피, 차 같은 해외 식민지 제품을 수입했다.
나폴레옹은 영국에 곡물 수출을 끊으면 영국이 못 버틸 걸로 봤다. 나폴레옹의 예상이 빗나갔다.
영국은 해외 식민지를 통해 물자를 조달하면서 프랑스 경제 보복을 피해 나갔다.
영국을 봉쇄하려다 유럽 경제가 봉쇄당한 꼴이 됐다. 견디다 못해 러시아가 영국산 수입 제한을 풀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손보겠다고 원정 나섰다 패했다.
▶1919년 6월 28일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 독일 장관 둘이 들어섰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강화조약에
서명하는 자리였다. 베르사유조약 232조는 독일이 전쟁으로 야기한 피해를 전부 보상한다는 경제 보복 조항이었다.
영국 재무부 대표로 강화조약을 지켜봤던 경제학자 케인스는 독일 경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전쟁 배상금이 결국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봤다. 실제로 절망한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선택했고 세계는 2차 세계대전의 지옥으로 들어갔다.
▶중국산 마늘 파동, 사드 보복과 같이 중국은 경제 보복 카드를 상시적으로 사용한다.
2010년 9월 센카쿠 열도 분쟁 당시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일본이 물러섰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재미 붙인 듯 중국은 이번에는 노르웨이 연어 생산 지역에 분풀이를 했다.
한 해 만에 노르웨이 연어의 중국 수출이 70%나 줄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 때 중국을 비난했던 일본이 이번에는 한국에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로섬 게임의 정치와 달리, 경제는 윈윈(win-win)이 가능한 영역이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자유 무역 질서는 윈윈의 체제다. 한·일 경제도 그 질서 위에서 긴밀하게 얽혀 성장해왔다.
일본이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면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에도 피해가 돌아간다.
케인스는 100년 전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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