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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벽돌책] 종교 창시자들은 종교적이지 않았다

바람아님 2019. 7. 27. 16:06

(조선일보 2019.06.08 장강명·소설가)


축의 시대


장강명·소설가장강명·소설가


침팬지에게도 기초적인 도덕 감각이 있고, 인류의 종교적 행동은 기원이 최소한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유교, 도교, 힌두교, 불교, 그리스 철학,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같은 주요 종교와 사상은

2500년 전 전후에 불쑥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 놀라운 현상이라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카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축의 시대'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수녀였다가 환속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740쪽짜리 저작 '축의 시대'(교양인)는 이 시기를 깊이 들여다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고, 농업 발전으로 인류가 먹고살 만해지자 비슷한 때 여기저기서 체계적인 교리가 나왔을 뿐'이라며

심드렁해하실 분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이유에서 적극 추천한다.

먼저 동서양 고전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혀준다는 점에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가?

구약성서의 야훼는 왜 그토록 무섭고 혼란스러운가?

논어는 어떤 면이 혁신적인가?

암스트롱은 고대 사회의 역사와 삶의 조건을 상세히 설명하며 질문에 답한다.

암흑시대를 경험한 그리스인들은 비극적인 세계관 속에서 '강렬한 삶'을 꿈꿨다.

구약에는 유대인들이 다신교 전통을 버리고 전쟁신인 야훼를 선택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공자는 우리 모두에게 완전한 인간인 '군자'의 잠재력이 있으며, 그 길은 자기계발에 있다고 말했다.


축의 시대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저자: 카렌 암스트롱/정영목 옮김/ 교양인/ 2010/ 738 p
209-ㅇ239ㅊ/ [정독]인사자실/ [강서]2층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둘째 이유는, 종교가 아편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해당 시대 상황

속에서 바라보면 축의 시대 사상가들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종교의 창시자들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질문을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믿음과 황홀경을 부정하고 행동과

생활감각을 중시했다. 이 통찰은 종교가 근본주의 신앙으로 퇴행하는 현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축의 시대'는 교양인 출판사의 대표작이자 스테디셀러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가 옮겼는데 작업에 4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번역 원고가 워낙 유려했다고 한다.

종교학자들의 추천과 독자들의 호평 속에 관련 분야에서는 필독서로 통하는 분위기다.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