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9.08.13. 21:23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한반도의 우적(友敵) 개념이 하루아침에 상전벽해다. 분단 이후 한반도에서 가동되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구도가 북·미의 의심스러운 결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비정상이 새로운 정상이 되는 혼돈의 시대에 들어섰다.
워싱턴을 향한 우리의 속마음 역시 씁쓸하다. “한국 방위비 받는 게 월세 받기보다 쉽다”고 떠들어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도 재선을 위해서 한반도를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거론하며 “나도 한·미 훈련이 싫다”며 북한 미사일 발사를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며 면죄부를 주었다. 실전훈련을 통해 대북방어태세를 방증해온 동맹의 상징인 연합훈련은 조만간 컴퓨터를 활용한 지휘소통제훈련(CPX)조차도 김 위원장을 달래기 위해 영구 중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미 모두가 원치 않는 연합훈련의 운명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내년 재선에서 패배할 경우, 각종 후유증에 시달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재선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지옥에라도 갈 심산이니 미래 행보는 예측 불허다.
그나마 무너지는 안보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한다. 잇단 도발에 손을 놓는 미국을 바라만 보며 한숨만을 짓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침묵이다. 문 대통령은 단 한차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주재하지 않았다.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면 북·미 실무협상이 개최되기를 기대하는 것 이외에는 무대책이다.
지난 2년간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운전자론은 평양의 조롱과 야유로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있다. 북한의 갈라치기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대화하면서 남한을 배제하는 것) 전략으로 한·미동맹은 급속하게 와해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자금 모금 행사장에서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의 안보와 외교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8년 제헌헌법 제정 이후 2019년과 같이 한국이 한반도 주변 강국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무원에 처하게 된 것은 초유의 사태다.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는 일편단심 평양정책은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을 결탁시켜 놓았다. 하지만 한쪽으로부터는 ‘오지랖 넓다’는 힐난을, 다른 쪽에서는 ‘비용청구서’를 받기에 정신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가 만만치 않다. 이제라도 허상에 얽매이지 말고 국익 관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늦게라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문재인정부가 끝나는 2022년 봄에는 한 마리의 송아지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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