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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42] 동방박사

바람아님 2014. 1. 1. 16:44

(출처-조선일보 2011.12.23.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


동방에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한 동방박사는 어떤 사람들일까? 마태복음(2:1-2)에 기록된 박사(Magus)라는 말은 물론 박사학위(Ph.D.)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원래 '조로아스터의 사제' 혹은 '점성술사'를 뜻한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전승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페르시아의 사바(Savah)라는 곳에서 동방박사의 성묘를 찾아 '머리카락과 수염까지 그대로 온전한' 유해를 직접 보고 왔다고 주장하는 마르코 폴로의 기록이 흥미롭다.

발타자르, 가스파르, 멜키오르라는 이름의 박사들(혹은 이 지방의 왕들로 기록되기도 한다)은 갓 태어난 한 예언자를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하기로 한다. 
그들은 만일 아이가 황금을 받으면 지상의 왕이고, 
유향을 받으면 신이며, 
몰약을 받으면 치유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난 곳에 찾아가서, 그들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홀로 아이를 보러 들어가니 그의 나이와 생김새가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라 밖으로 나왔다. 그 뒤 중간 나이이던 두 번째 사람이 들어가 보니 역시 나이와 생김새가 자기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갔을 때에도 역시 다른 두 사람과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는 생각에 잠겨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은 함께 모여 자기들이 본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크게 놀란 세 사람이 다 같이 들어가자 비로소 아이는 생후 열사흘밖에 되지 않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다. 
아이는 세 사람 모두를 맞이하고 선물을 받은 다음 그들에게 봉함된 상자 하나를 주었다.

세 사람이 자기 나라를 향해 돌아가다가 아이가 준 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어서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돌멩이 하나만 있었다. 
그들은 예수가 세 가지 선물을 모두 받는 것을 보고 그가 지상의 왕이요 신이며 치유자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는 그런 믿음이 돌처럼 굳고 변함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돌을 준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돌멩이를 우물에 던졌다. 그러자 거대한 불기둥이 우물구멍을 통해 하늘로 치솟았다. 그때 가서야 그들은 이 돌이 큰 의미와 효용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는, 그 불을 채취하여 자기 나라로 가져가 교회에 안치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재미있는 옛 전설이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오늘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피고' 편안하게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