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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43] 안뜰과 러브 라운지

바람아님 2014. 1. 3. 11:45


(출처-조선일보 2011.12.3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한 해였다. 사람들은 늘 분주했고,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고, 심각한 갈등도 계속되었다. 이런 시대에 원만한 삶을 살면서도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만큼 좋은 방안이 또 있을까.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다가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알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픽사(Pixar) 영화사를 운영하여 '토이스토리' 같은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나서 본사 건물을 다시 지었다. 자신이 만드는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성품 그대로 그는 이 건물의 모든 측면에 세세하게 관여했다. 대개 영화사 건물이라면 프로젝트별로 건물이 따로 있고, 각 개발팀별로 방갈로들이 나뉘어 있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튜디오를 떠올린다. 그러나 잡스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디지털 시대는 온라인상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시키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사람들 간 만남을 막고 고립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런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잡스는 건물 자체가 우연한 만남과 협력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픽사 본사는 그런 아이디어를 구현하도록 설계했다. 중앙에 큰 안뜰을 놓고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이를 둘러싸게 지은 것이다. 현관문들과 주요 계단, 복도들이 모두 안뜰을 내다보았고, 영화 상영관들과 회의실 창문들 역시 모두 안뜰을 향했다.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나와 안뜰의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잡스는 심지어 남녀 화장실을 커다랗게 하나씩만 만들어 안뜰과 연결되게 하라고 지시했다. 결국은 임산부의 불편함을 고려하여 화장실을 두 개로 늘렸지만, 화장실에 가다가도 사람들이 만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안뜰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고 내밀한 공간 또한 필요하다. 사무실 안쪽 벽에 있는 작은 문을 열면 기어서 통과할 수 있는 낮은 통로가 나오는데, 이 통로를 지나면 '러브 라운지'라고 하는 비밀의 방이 나오게 꾸몄다. 크리스마스 조명, 칵테일 테이블, 쿠션, 바 용품들이 갖추어진 이 비밀의 방은 동료들이 친밀하게 의견을 나누는 아지트가 되었다. 이메일과 인터넷 관련 제품을 팔아 먹고사는 사업가들 자신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적 만남을 가장 중시하고 있었다.

다사다난이 또다시 예정되어 있는 새해, 만나서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