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10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뇌들보
'와다 검사'라는 뇌 테스트가 있어요.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마취제로 마비시켜서 각각의 언어기능과
기억력을 알아보는 검사로, 일본계 캐나다 신경학자 준 와다(95) 박사가 개발했어요.
이 검사를 할 때 마취된 한쪽 뇌는 정상적으로 깨어 있는 반대편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양쪽 뇌가 모두 마취에서 깨어나면 다시 하나의 뇌처럼 일하게 되고요.
이 실험을 통해 좌뇌와 우뇌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고 정보를 전달해주는
통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요.
▲ 뇌들보(왼쪽·오른쪽 사진 속 검은 부위)는 좌뇌와 우뇌를 연결해주는 10㎝ 길이 신경 다발입니다. /위키피디아
두 개로 기능이 나눠진 뇌를 마치 하나의 뇌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뇌들보'(뇌량·Corpus callosum)입니다.
약 10cm 길이인데, 2억개의 신경 다발로 이뤄졌어요. 좌뇌와 우뇌가 정보를 교환할 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두 도시가 연결되면 큰 대도시가 생기겠지요? 뇌들보의 역할은 양쪽 뇌 기능을 합쳐서 더 똑똑한 뇌로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뇌는 이 뇌들보가 남들보다 두꺼웠다고 해요.
처음에는 뇌들보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과학자들도 잘 몰랐어요. 섬유로 만든 밴드 같은 모양이어서
그저 두 개의 뇌를 묶어 놓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1955년 로널드 마이어라는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생이
뇌들보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뇌가 복잡한 문제를 풀고 미세 조율도 할 수 있다는 걸 밝혀냈어요.
뇌들보가 굵을수록 좌뇌와 우뇌 사이에 정보가 더 빨리 움직이겠죠.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면 뇌들보를 굵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해요. 대표적으로 악기를 배우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 2년 이상 꾸준히 음악 교육을 받으면 뇌들보가 굵어진다는 연구도 있답니다. 청소년기에 어떤 생활을 하느냐가
뇌들보 굵기에 큰 영향을 주는데, 30대까지도 뇌들보는 더 굵어질 수 있다고 해요.
뇌들보에 문제가 생기면 몸은 하나인데 뇌 두 개가 따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돼요.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져 무모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읽기, 쓰기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사회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요. 자폐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강박장애가 모두 뇌들보 손상 때문에 일어난다는
연구도 있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뇌들보가 회사나 학교처럼 아주 익숙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혀졌답니다.
그래서 뇌들보가 망가진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늘 가던 길도 자꾸 헤매는 것이라고 해요.
뇌들보가 완전히 없어져도 좌뇌와 우뇌의 연결 고리가 조금 남아 있기는 해요.
고속도로가 끊겨도 지방도로가 있어서 길을 돌아서 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래서 뇌들보를 없애는 수술을 해도 밥을 먹고 걷는 것 같은 일상생활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다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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