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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북한산 백운산장, 하산하던 날

바람아님 2019. 12. 3. 07:53


연합뉴스 2019.12.02. 19:21


백운산장을 아시나요?

서울 우이동 북한산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작은 건물이 보입니다.

백운산장 전경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작은 오두막으로 시작한 백운산장은 우리나라 1호 산장이자 국립공원 마지막 민간 산장입니다.

영원한 산장지기 지난 2017년 12월 31일 산장지기 이영구-김금자씨 부부 모습. 이영구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백운산장에서는 등산객들에게 음료ㆍ간식을 팔았고, 정상에 일찍 오르려는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하룻밤 잘 수 있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또 국립공원 음주가 허용됐던 시기에는 백운산장에서 판매하는 막걸리와 두부는 등산객들에게 등산의 이유가 되는 '별미'였습니다. 산꼭대기라고 '바가지요금'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백운산장 2층 침실 북한산 산악인들의 편한 잠자리였던곳.

그렇게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으로 가는 길목을 95년 동안 지켜온 백운산장이 12월 2일 폐쇄됐습니다. 지난 1992년 화재를 겪고 난 후 1998년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신축허가를 받았으며, 2017년이 되면 국가에 산장을 내놓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산장 반납일이 다가오면서 북한산과 백운산장을 사랑했던 등산객들은 서명운동을 하면서 산장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법원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손을 들어줬습니다.

백운산장이 철거되는 아침, 국립공원 관계자와 등산객의 얼굴에는 착잡한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한국의 등산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이 됐던 북한산을 오가던 수많은 산객들도 철거 소식에 마음 아파했습니다.

백운산장의 철수 모습 한국 1호 산장이던 백운산장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게 철거를 지켜본 사람은 산장지기 김금자 할머니였습니다.

산장지기 김금자 할머니가 철거된 산장 현판을 보고 있다. 산장 현판은 마라토너 손기정 옹의 친필이다.

할머니는 벽에서 철거된 산장 현판을 어루만지면서 아쉬워합니다. 전설적인 마라토너 손기정 옹의 친필 현판을 소중히 보관해달라고 국립공원 관계자에게 신신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옮겨지는 백운산장 현판 국립공원 관계자가 벽에서 떼어낸 산장 현판을 밖으로 옮기고 있다.

등산객들의 온기가 사라진 2층 침상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바닥에 놓인 사진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던 백운산장의 모습은 이제 더이상 볼 수 없습니다.

정리작업 중인 백운산장 2층

산장 정리작업이 마무리되면서 국립공원 관계자가 김금자 할머니에게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김 할머니가 산장 반납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명도합의 및 이행각서' 조항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마지막 산장지기 할머니는 각서에 지장을 찍은 뒤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산장을 반납해야 한다는 억울함 보다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지워진다는 아쉬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백운산장 마지막 산장지기 김금자 할머니가 명도합의 및 이행각서에 지장을 찍고 있다.

드디어 백운산장 문이 닫혔습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이 산장 출입문을 폐쇄한 뒤 안내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산장 출입문 폐쇄하는 국립공원 관계자들

100년 가까이 이어온 백운산장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산장 출입문 폐쇄하는 국립공원 관계자들

부근을 지나던 등산객들도 휴대폰으로 산장을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으며 아쉬워합니다.

백운산장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는 등산객들

지난 36년 동안 산장을 오르내리며 식재료를 운반했었던 문현식(65)씨도 더이상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빈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힘없이 하산길을 재촉합니다.

36년 동안 산장을 오가며 식재료를 운반했던 문현식씨

산장 출입구가 폐쇄된 후 기자가 산장지기인 김금자 할머니와 아들 이백인씨에게 마지막 기념촬영을 권유하며 출입구 앞에 세웠습니다. 카메라 렌즈안에 모자의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폐쇄된 산장 앞 김금자 할머니와 아들 이백인씨

100년 가까이 북한산 산객들을 맞던 백운산장의 마지막 산장지기 김금자 할머니는 "그간 산장을 이용해준 등산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citybo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