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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문재인 정권, 휴브리스가 네메시스를 부르다

바람아님 2019. 12. 6. 11:05

(조선일보 2019.12.06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권 탄핵 막을 철통 같은 방어선 구축
선거법·공수처는 완결판… 하지만 조국 사태로 重傷
유재수·백원우 사태는 오만한 정권의 업보… 절망 가운데 희망의 싹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권의 국정 비리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정책 실패로 내치와 외치가 엉망이 된 건 국정 난맥이다.

하지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선거 공작은

청와대발(發) 악성 국정 농단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위기 상황에도 문 정권이 견고하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차 대통령으로서는 높은 지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여느 정부 같으면 정권 차원 위기로 커졌을 텐데 문 정권은 버텨내고 있다.


문 정권은 국가 운영(statecraft)에 실패했건만 헤게모니는 잃지 않았다.

정국 주도권을 잡고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도입으로 장기 집권을 노린다. 더불어민주당 20년 집권론은 허풍이 아니다.

문 정권의 통치 전략은 박근혜 정권의 몰락 과정과 대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 자리에서 수직 추락한 것은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은 탄핵 한참 전에 헤게모니를 잃고 정치적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헤게모니(hegemony)는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同意)와 국가기구의 강제력을 합쳐 정치적 지배를 굳히는 능력이다.

민주 정치에선 민심의 동의 없이 강제력을 발동하기 어렵다.

87년 체제에서 민주 정권을 뒤엎는 군사 쿠데타가 불가능해진 이유다.

어떤 권력도 적나라한 강제력만으로 통치할 수는 없다. 문 정권은 행정 권력과 사법 권력, 군대와 경찰 같은 국가기구를

전유(專有)함과 동시에 자발적 동의 영역인 언론·문화계·공론장·SNS 장악에 사력(死力)을 기울였다.

헤게모니 싸움에 앞장선 어용 지식인들에게 천문학적 떡고물을 선사하는 게 생생한 증거다. 헤게모니 창출 전술은

권력이 시민사회를 식민화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진보적 시민단체와 문 정권의 유착이 그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국민 30~40%의 열렬 지지층이 있다.

이들이 대통령을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숭앙(崇仰)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강력한 헤게모니는 시민들의 동의에서 나온다.

문 정권 헤게모니의 원천은 문재인이야말로 정의와 공정, 올곧음과 바름의 정치인이라는 지지자들의 확신이다.

조국 사태에서 문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을 동일시한 시민들이 조국 사수(死守)를 외친 이유다.

압도적인 사실적 증거가 조씨 일가의 범죄 혐의를 가리켜도 이 열성 지지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재인 팬덤'식 무조건 지지 현상은 유재수·백원우 사태에서도 반복되려 한다.


문재인 정권은 정의의 수호자라는 자화상을 헤게모니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다.

적과 동지를 갈라 적을 궤멸시키는 적대 정치를 정의 구현처럼 분식(粉飾)한 진리 정치를 절대 반지로 휘두른다.

2016~17년 촛불에 편승한 민주당의 정권 획득이 진리 정치의 자기 확신을 팽창시켰다.

문 정권이 국정 실패와 국정 농단의 신(新)적폐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공세적으로 나오는 건 진리 정치의 자만심에 더해

열광적 지지층의 헤게모니를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 지지를 철회한 시민들은 자유한국당을 대안 정당으로 보지 않는다.

정의를 상징하는 문 정권에 대적(對敵)하는 한국당은 불의(不義)의 세력이라는 대중적 이미지가 민주당 헤게모니

전략의 핵심이다. 탄핵 민심을 거역한 수구 정당 한국당의 존재 자체가 민주당 헤게모니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물증으로 수용된다. 화석화한 한국당이야말로 문재인 정권의 홍복(洪福)이다.

지금의 한국당은 문 정권의 침몰을 막아주는 최후의 방파제인 것이다.


청와대의 선거 공작 의혹이 탄핵론으로 비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학습한 문재인 정권은 탄핵을 막을 철통 같은 방어선을 완비했다.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도입은 그 완결판이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바깥에도 청와대를 지킬 진지를 겹겹이 마련해 놓았다.

조국 사태에서 친여 언론과 시민사회는 문 정권 옹위를 위한 진지전(陣地戰)의 결사 항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국 사태는 문 정권 헤게모니에 중상(重傷)을 입혔다는 점에서 나라 전체엔 '위장된 축복'이었다.

유재수·백원우 사태는 촛불에 취한 문 정권의 휴브리스(hubris·오만함)가 초래한 네메시스(nemesis·업보·業報)다.

역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건곤일척의 기동전(機動戰)인 총·대선 승리를 위해선 먼저 공론 영역의 진지전에서

이겨야 한다. 절망의 한가운데서 희망이 싹트는 게 인간사의 철칙(鐵則)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