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2.07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은 퓰리처상과 함께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올해는 한국계 수잔 최(50)가 받아 더 눈길이 갔습니다.
엊그제 본지 문화면에 이메일 인터뷰가 실렸더군요.
수잔 최가 한국계라는 사실은 많은 언론에서 화제가 됐지만, 그가 일제강점기
영문학자 최재서(1908~1964)의 손녀라는 점은 크게 언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친일(親日) 낙인이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겠죠.
영국 작가 하틀리의 소설 '중매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역시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84)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문장을 빌려와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이라는
에세이집을 냈죠. 당시의 친일을 지금의 관점으로 비판하려면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경험적 고백록이었습니다.
6년 전인가요. 생전의 김윤식 서울대 교수를 만났을 때입니다. 다음다음 날 일본 도쿄대에서 강연한다 하시더군요.
제목은 '한국에서 외국 문학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경성제대 영문과에 사토 교수라고 있었다는 것.
정년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경성제대 영문과에는 조선의 수재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 수재들이 외국 문학을 통해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염원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받았다."
사토 교수의 직계 제자가 최재서였습니다. 2019년의 어떤 후배 세대가 보기에 최재서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지만,
당대에 그를 경험한 일본인에게는 문학으로 조국의 해방과 자유를 꿈꾸던 조선의 수재였던 것이죠.
최재서는 런던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성제대와 보성전문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그의 아들 최창은 미국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를 받고 인디애나대학 수학과 교수가 됐습니다.
최창의 딸 수잔 최는 예일대 영문과를 나와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고요.
이번 전미도서상을 받은 작품 제목은 Trust Exercise.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데, 굳이 옮기자면 '신뢰 연습'쯤이 될까요.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인간의 아이러니가 그 안에 있다고 하더군요.
수전 최는 "할아버지의 삶과 그가 남긴 복잡한 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의 삶을 다룬 소설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궁금합니다, 수잔 최가 완성할 소설이.
과거라는 거울로 바라본 시대의 흐름 (연합뉴스 2011.05.17) |
유종호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50년 넘게 비평활동을 해온 문학평론가 유종호(76) 씨의 비평에세이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현대문학 펴냄)이 출간됐다.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 유종호 비평에세이 지난해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을 묶은 이번 책은 1950년대 대학가의 풍경과 지난 시대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문학의 표절과 모작의 문제, 최근 읽은 책과 일상의 소회까지 저자의 다양한 글을 담았다. 저자는 영국작가 L. P. 하틀리의 소설 '중매인'의 첫 대목인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를 "과거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의의 하나"라고 소개하며 정확한 과거의 이해를 강조한다. 그는 "현기증 날 정도의 격심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은 20세기의 한국에서 근접 과거는 원격과거 못지않은 '외국'이 되어 있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며 "흔히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통상적인 역사교육은 역사적 상상력의 세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략) 과거가 외국이며 거기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거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연대기가 아닌 사회사의 교육이 필요하다."(14-15쪽) 젊은 독자들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무라카미의 상상적 경쟁상대는 텔레비전과 스포츠와 비디오와 스테레오"라며 "그 경쟁에서 그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고전이 보여주는 문학적 위엄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정지용의 시 '향수'가 미국시인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의 모작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면서 "사소한 공통성이나 유사성을 곧 차용이나 도용이나 흉내로 간주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개개 작품의 성취도와 작품적 충격이다. 그리고 표절이나 차용이 의심되는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광화문 서점가를 배회하는 것이 요즘 소일거리라는 그는 "현재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읽은 것보다 못 읽은 것이 훨씬 많다"며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낀 소회를 전했다. "그럼에도 아직껏 서점가를 배회하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이 전과 다름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최면적 착각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다가올 불가피한 시간의 접근을 잊고 외면하자는 무의식의 방책이었던 것이다."(3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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