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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도보여행자(Wayfarer)] [9] 올리브와 에게해의 나이트라이프

바람아님 2019. 12. 9. 16:48

(조선일보 2019.12.09 유민호 퍼시픽21 아시아담당디렉터)


아테나 여신상.

아테나 여신상.그리스 아테네 한가운데에 우뚝 선 아크로폴리스. 보는 순간 압도된다.

축구 경기장 4개 공간에 무려 11개 신전이 들어서 있다.

중심은 지혜의 신 아테나(로마명 미네르바)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다.

신만의 공간인 듯하지만,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 터전도 아크로폴리스다.

신이 곧 인간 민주주의다. 방문객이라면 구석구석 열심히 살필 듯하다.

아테네 왕 이름을 딴,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신전 '뒤'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기 바란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서 있는 유일한 나무, 처녀신 아테나가 그리스인에게

선물로 내렸다는 올리브다. 에게해·지중해 올리브의 원조다.


올리브는 그리스 문화 문명의 상징이다.

대부분은 요리용 올리브 오일부터 떠올릴 듯하다.

소금 식초로 채워진 반찬과 음료, 비누, 마사지, 장례, 상처 치료에도 활용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램프 기능이다. 2500여 년 전 에게해 밤을 밝힌 빛이다.

어둠을 정복한 초유의 역사가 아테네에서 시작됐다. 양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에, 모두가 부담없이 사용했다.

원형극장에서의 그리스 드라마는 일몰 직전에 시작됐다. 끝난 뒤 심야에는 시, 음악, 와인, 음식을 즐겼다.

오일램프 덕분에 나이트라이프가 가능해진다.

일몰 즉시 어둠의 노예가 된 페르시아·아시아·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구세주를 의미하는 메시아(Messiah)의 원래 의미가 '기름 부은 자(Anointed)'라고 한다.

'기름 부은 자'만이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의 기름은 올리브 오일이다.

왜 올리브가 구세주 탄생으로 연결됐을까? '밤을 몰아내는 빛'이란 부분이 이유일지 모르겠다.

일몰 후 어둠만이 아닌, 악·병·죽음·공포·부패·거짓말·폭정을 몰아내는 빛이다.

먹고 즐기는 속(俗)으로서의 그리스 문화 문명, 기도하고 축복하는 성(聖)으로서의 메시아 탄생이다.

올리브 오일은 속과 성의 공통분모다.


지난달 터키 바닷가의 올리브 수확에 동참했다. 에게해 올리브 수확은 가족 총동원 축제다.

흑백필름 시대 한국의 겨울 김장 준비와 비슷하다. 속과 성이 공존하는, 아니 속과 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신성한 의식이 올리브 수확의 또 다른 의미일지 모르겠다.

아크로폴리스에 들른다면 원조 올리브의 향을, 가을철 에게해에 간다면 올리브 수확을 '꼭' 체험해보기 바란다. 




블로그에서 같이 읽을 거리 :


[풍경화 명작 기행]

(11) '마음의 고향' 아크로폴리스…잊혀진 금빛 노을도 되살아났네

(한국경제 2011.01.28 정석범 미술사학박사)
http://blog.daum.net/jeongsimkim/3252 


레오 폰 클렌체-'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아레오파구스의 이상적 풍경' 도해(圖解)
http://blog.daum.net/jeongsimkim/3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