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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한국 일기] 비슷해 보이지만 크게 다른 韓·英 가정… 핵심은 육아 철학

바람아님 2019. 12. 10. 10:07

(조선일보 2019.12.10 팀 알퍼 칼럼니스트)


신생아부터 따로 재우는 영국, 초등생도 엄마 곁에서 자는 한국
영국 아이들 밤 9시면 침대로, 한국 아이들 밤 10시 넘어서 귀가
비정상적 양극단 차이 풀려면 모두 만족시킬 행복한 중도 찾아야


팀 알퍼 칼럼니스트팀 알퍼 칼럼니스트


한국 사람들과 나의 모국 영국 사람들의 일상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양쪽 모두 청바지나 레깅스를 입고 햄버거를 먹으며 줄거리 비슷한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연배가 있는 한국 사람들은 비틀스를 듣고 영국의 10대는 K팝을 듣는다.


언뜻 보면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비슷하다.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위험천만해 보이는 장난을 치는 동안 아빠는 벤치에 앉아서 열심히 페이스북 계정을

들락거리는 것은 마포나 맨체스터 놀이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말에는 극장에 가서 최신 디즈니 영화를 보며 충치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양의 팝콘과 콜라를 소비하고,

부모들이 돈 문제로 다투는 동안 아이들은 장난감이 누구 것인지를 두고 투덕거린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한국과 영국 가정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차이를 만든 핵심은 바로 육아에 대한 철학이다.


내가 열네 살이던 1991년으로 돌아가 보자. 밤 9시가 되면 나는 모든 불을 끈 채 침대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만약 작은 불빛이라도 새어나가는 날이면 부모님의 노여움을 사서 심한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당시 잠이 들 만큼 피곤하지 않았던 나는 잠이 올 때까지 두꺼운 이불 밑에서 손전등을 켜고 축구 잡지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신용카드만 한 휴대용 텔레비전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자,

나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두고 원하는 만큼 텔레비전을 보다 잠에 들었다.

2019년 서울에 사는 시호 아빠는 밤 10시가 훌쩍 넘어 녹초가 돼 귀가한다.

아빠를 보자 시호는 "아빠!" 하고 외치며 달려든다.

결국 시호는 아빠와 놀다 11시가 다 돼서 소파에서 잠이 들고, 짜증난 엄마가 침대로 옮겨준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다 되어서 간신히 깨어난 시호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엄마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입에는 빵 한 쪽을 문 채, 문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유치원 버스에 탄다.

오후 3시쯤 유치원에서 나오면 다시 태권도장에서 두어 시간을 더 보내다 귀가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양쪽 시나리오가 모두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나 혼자일까?

나의 어린 시절처럼 아이들이 자기 시간을 방해받기 싫은 부모들에게 해가 지기도 전에

우리로 내몰리는 양과 같은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시호의 상황 또한 나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1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면 나와 같은 성인 남자도 다음 날 좀비가 되는데, 가끔 10시가 넘어서도 놀이터에서

꽥꽥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과연 그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5, 6세는 물론이고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까지도 엄마 곁에서 함께 잔다는 얘기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로 자란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자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그러나 마찬가지로 한국 엄마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있다. 영국에서는 대개 신생아 때부터 다른 방에서

혼자 재운다는 사실이다. 아기와 부모가 한 침대에서 자는 일은 영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인 부모들은 우는 아기를 곁에서 달래기보다 아기가 자는 방으로 달려가 우는 아이를 달랜 후

자기 침대로 돌아오기를 선호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나의 부모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아기였을 때 밤중에 잠에서 깨 울면 혼자 누워 있는

어두운 방에서 5분 정도 그냥 울게 놔두고 내가 다시 잠에 드는지,

아니면 정말 가서 달래주어야 하는지를 판단하셨다고 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한국 엄마라면, 서양 부모의 비정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한국과 영국의 육아 방식은 극과 극이다.

한국 아이들은 낮 시간 대부분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다가 부엉이나 여우가 출몰할 시간까지도 깨어 있다.

밤에는 쟁기를 몰고 염소 젖을 짜기에 충분할 나이가 될 때까지도 부모 곁에서 잔다.

반면 영국 아이들은 기기도 전에 이미 혼자 방을 쓰다가, 조금 더 크면 오후 3시쯤 학교에서 돌아와 온종일 할 일 없이

빈둥대다가 아직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 침대로 가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 양극단 상황을 풀 유일한 방법은 두 쪽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행복한 중도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대한민국이든 영국이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든 아이 얼굴에 행복하고 건강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